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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금요일

꿈꾸는 세상살이 2014. 12. 20. 10:14

13일의 금요일

우리는 가끔 13일의 금요일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은 예수가 12제자와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여 로마군에 인계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총독 빌라도에게 판결을 받았으나 죄가 없다고 인정되었어도, 당시 유대인들은 기존의 선지자들과 다른 말을 하였다고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총독 빌라도는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예수를 살리고 싶었으나 민중이 원하는 바람에 예수를 유대인에게 넘겨주었고,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면서 로마의 피지배민족이었던 유대인들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 결과 예수를 당시 가장 극형이었던 십자가에 못을 박아 사형을 시키고 말았다. 이날이 바로 금요일이었기에 13일의 금요일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이후 서양에서는 13이라는 숫자를 불길한 수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났으며, 그날에 금요일이 겹치면 아주 불길한 날로 여기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4라는 숫자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우리가 건물에 4층이라는 수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는 13층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금기시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4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한 수에 불과함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서양의 13층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하나의 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4(四)라는 숫자가 한자로 죽음이라는 사(死)와 발음이 같다고 하여 꺼리지만, 따지고 보면 숫자 4와 죽음의 사는 그 어원부터가 다르다. 하나는 수를 세는 단위이며 하나는 명사로 어떤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상호 연관이 전혀 없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13일이라는 숫자는 열세 번째의 날이라는 의미이며 13명이라는 숫자는 그 수를 세어보니 열세 번째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4층은 따질 의미가 없지만 서양의 13층은 나름대로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기로 하면 선박 사고가 나서 많은 인원이 희생을 당하였을 때 그 숫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 모이면 그 날 역시 불길한 날이 되어야 하며, 둘이 가다가 한 명이 사고로 죽은 후 살아남은 사람이 누구든지 또 다른 한 사람을 만나면 그날은 불길한 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숫자로 인한 불길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계속하여 13일의 금요일을 강조하면서 금기시하면 정말로 귀신이 그날 찾아온다는 것이다. 귀신은 원래 대접받고 군림하기를 좋아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자기를 추켜 세워주고 떠받들면 우쭐해져서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쫓아가는 습성이 있다. 성경을 보면 귀신이 예수를 향하여 자기에게 절을 하고 자기 말을 들으라고 꼬드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다 주겠다는 것이다.

귀신은 사람을 꼬드기고 유혹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에게 대접하면 잘 보답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답은 오래가지 못한다. 귀신은 원래 대접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 많은 대접을 더 자주 해주어야만 겨우 그 정도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머피의 법칙과 함께 13일의 금요일 혹은 4층이라는 숫자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날 그런 일이 일어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다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여 피할 수 있었는데 피하지 못한 인재(人災)가 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고(事故)는 막을 수 없지만 인재는 줄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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