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는 것이 미덕
우리는 음식 대접을 받으면 잘 먹기를 바란다. 그런데 잘 먹는 다는 것을 배불리 먹고도 남도록 푸짐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처음부터 손님이 남긴 음식을 주인이 먹으려고 장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한 말로 식당에서나 가정에서나 손님이 먹다 만 음식은 주인이 먹지 않고 버리는 것이 미덕이 된 세상이다. 그러기에 그냥 준비하는 김에 푸짐하게 장만하여 먹다 모자라서 낭패를 당하지 않겠다는 딱 그 정도 계산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음식이 모자란다면 그것 또한 곤란한 일일 것이다. 예수님도 혼인잔치에서 모인 손님들에게 내놓을 포도주가 모자라자 남은 술로 축사를 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푸짐하게 대접하였으니 말이다.
이런 의식은 우리가 못 먹고 살 적에 손님은 배불리 먹이자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말하자면 평소에 나는 먹을 것을 아껴두었다가 어쩌다 한 번 오는 손님을 위하여 잘 대접한다는 취지로, 말하면 남을 위한 배려와 희생인 것이다.
그러다가 강점기시대에 잘못 전해진 한식에 대한 편견으로 모든 음식은 먹다가 질려서 남기는 것이 미덕으로 변질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소비가 아닌 낭비가 바로 미덕이 된 셈이다.
한 해에 버려지는 음식물 자원이 8조원이라는 말도 있고 10조원이라는 말도 있다. 또한 연 550만 톤에 달하는 음식물 처리 비용이 8천억 원이라고 한다. 요즘 푸드뱅크라는 것이 생겨나서 신선한 음식을 버려지기 전에 활용한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양은 아직도 미미하여 버려지는 음식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먹다가 미처 먹지 못하여 상해서 버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젓가락 한 번 숟가락 한 번 대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이 많다는 것은 분명 고쳐야 할 식습관이다.
어떻게 보면 유행하고 있는 뷔페음식은 이런 면을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모든 식단을 뷔페식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음식은 배불리 그리고 먹다가 남길 정도로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손님 또한 그렇게 해야 대접을 잘 받았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음식이란 원래 맛있게 먹는 게 원칙이지만, 만약 먹다가 모자란다면 다른 음식으로 입맛을 돌린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배워온 편식을 방지하는 일이기도 하며,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는 주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언제 누구랑 우리 집에 오세요 하는 것은 집에서 밥을 먹자는 얘기가 아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배불리 먹는 것이 목적은 아닌 것이다. 누구의 생일이라면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며, 누가 병들었다면 위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지인끼리 언제 밥 한 번 먹자고 하더라도 만나서 밥을 먹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것 역시 만나서 친목을 도모한다든지 하다못해 수다를 떨더라도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이다. 그러니 원래 목적을 잘 살려서 먹고 마시는 것에 치중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정에서 식구끼리 먹다가 남은 반찬은 냉장고로 들어가지만, 식당에서 손님이 먹다가 남은 반찬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명심하자. 먹다가 남기면 벌금이라는 문구는 있지만 실제로 지켜지는 경우는 없다. 모두가 인식 탓이다.
이런 식습관을 고치는 방법에 식당 주인이 먼저 나설 수는 없다. 자칫 쩨쩨하다는 소리와 함께 손님이 줄어들까 두려워서다. 좋은 방법은 오로지 손님이 먼저 그런 인식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반찬을 다 먹은 손님에게 작은 선물을 준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셀프주유소처럼 셀프 식당에서 값을 조금 할인해주는 것은 어떨까? 사찰 음식은 왜 남는 것이 없을까. 모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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