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내가 만난 산타크로스

꿈꾸는 세상살이 2016. 12. 26. 18:53

내가 만난 산타크로스

 

산타크로스는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언뜻 보면 솜으로 누비를 한 부유한 옷을 입었다. 빨간 열정의 분위기와 익살이 넘치는 딸기코를 치장한 캐릭터이다. 그런가 하면 추운 날에 눈이 펑펑 내려서 아무도 오갈 수 없는데 듬직한 사슴 두 마리가 썰매를 안내하고 있다. 수레에는 선물 꾸러기를 가득 담아 힘들어 보이기지만, 그래도 산타크로스와 사슴도 경쾌한 걸음 길을 뛰어간다. 그러나 산타는 멀고 깊은 산속에서 나왔으니 언제 우리 집에 올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일 뿐이다. 뿔이 커다란 사슴 두 마리가 전봇대와 위성방송 케이블 망에 걸리지 않을지, 시내 교차로의 급회선에 넘어져 내동댕이치지 않을까, 선물꾸러기 수레가 복잡하고 좁은 골목길을 찾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설사 방문하였다 하더라도 멀고 힘든 길에서 잠깐이더라도 쉬면서 때가 지난 밥을 대접하려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나는 산타크로스의 국적과 식성을 알지 못하며 도우미 사슴을 먹일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마련하려고 해도 한마디 말이 통하지 않는 먼 곳 방문자의 처지인 뿐이다.

 

그렇게 먼 그 길에, 세계 각국의 구석을 동시에 한 시간 이내로 방문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일까.

 

산타크로스를 동반한 성탄절 새벽에 죽은 사람이 있었다. 오래 전 그는 지인의 가족이었다. 이브에 호호가가 방문하여 준비한 선물을 보내며 성심으로 찬송을 드렸다. 즐겁고 축복하는 행위이며 더불어 누리는 행복이었다. 교우에게 보기 힘들어 보였지만 자신은 기쁘고 벅찬 축복에 겨워하였던 사람이다. 정말 이국의 눈길 속에서 나온 산타크로스 대신 우리나라의 곳곳에 나서는 사람이었을까.

기원에 의하면 산타크로스는 자신을 의미하며 이방인 사마리아 여인 같은 희생양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모든 세상의 산타크로스는 큰 수염을 달고 있는 할아버지뿐이었을까. 따뜻한 옷으로 완전무장한 건장한 남성, 그렇게 힘든 길이기에 혹시 죽어갈 때에도 여한이 없다는 할아버지였을까. 나는 그림엽서에서 만난 사람일뿐이다. 뚱뚱한 몸에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지고 작은 굴뚝 속으로 기어들었던 산타크로스는, 새로 만난 사람을 보며 항상 깨끗하고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선물보따리를 선사하였다.

 

우리나라를 떠난 그, 이별할 때 한마디 말도 못한 그는 나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였다. 앞선 지인과 함께 같이 동고동락하던 현세의 지인은, 머나 먼 타국에 가면서 조언을 한 것이다. 어느 누가 남에게 감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일까. 나는 그 말을 따르지 못할 자신이 없어 장기간 말도 못하고 망설일 뿐이었다. 그러나 일반인 기독교인이 그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모범이 믿는 상태인데, 헤어진 것은 벌써 1년과 6개월이 지난 세월이다.

나는 지금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다. 부뚜막의 소금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집안 식구들에게도 소금의 일꾼 노릇을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산타크로스는 굴뚝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그냥 사진 속에만 있어도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어쩌면 사람의 진정한 사람의 삶을 사는 사람을 보여 주는 것과 같다.

2016.12.25. 04:45~0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