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없는 소탐대실
소탐대실! 작은 욕심을 내고 탐하다가 큰 것을 잃고 손해라는 말이다. 그것은 욕심을 참아라 혹은 큰일을 하다가 작은 걸림돌이 있더라도 견디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쳇말로는 큰 것을 먹으려면 작은 것을 미끼로 제공하라는 말과 같다. 이런 말이 항상 맞는 것이 아니고,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생할 수도 있다.
나는 절약이 몸에 밴 베이비세대다. 처음부터 부유한 가정이었다면 절약이 기본이면서도 어느 정도는 사용하는 습관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나쁜 것도 아니며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돌고 도는 것이 인생길이며, 돌고 도는 것이 경제의 정의 중 일부다.
어릴 때 절약한 돈으로 옷을 사든지, 가방을 사든지, 부모님 생신 때 기뻐하실 것을 사드리면 된다. 커서는 모은 돈으로 집을 사든지 논밭을 사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회사에서 근무할 때 궁상떨지 마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으로 궁상을 찾아 나선 적도 있다. 나 혼자 전 회사원에게 절약을 강요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솔선수범하고 동참을 요구하는 차원으로 벌인 적도 있다.
종이 한 장이라도 절약하려면 이면지 재활용이 첫걸음이다. 그것도 과분하다며, 재활용이라는 명칭에 먹칠하지 않으려면 누런 봉투 재활용과 달력 재활용이 대표적이다. 내가 만들어 준 재활용 종이를 사용하는 부서와 방문한 교사가 만났다. 고등학생을 이끌고 취업 방문차 온 사람인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이 교사는 이런 사례를 두고두고 들었단다.
항상 느끼는 감이지만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마시고 버리는 1회용 컵이 아까웠다. 깨끗해서 만져도 정이 들고, 단단해서 사용하기도 좋다. 그런데 반드시 버려야하니 정말 어찌해야할지 난감도 느낀다. 그래서 나는 1회용 컵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커피 컵에 커피를 다시 활용한다면 찌꺼기가 남거나 색깔이 남아있어서 계속 재활용하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나는 맹물을 담아 마셔보았다.
맹물을 마시고 컵을 비우고 엎어 놓으면 바로 건조해져서 다시 활용해도 무난하다. 위생상도 전혀 이상이 없다. 하나, 둘, 셋, 넷… 쉰, 쉰하나, 쉰둘, 쉰셋… 그래도 거뜬하다. 내가 세는 방법은 컵 표면에 바를 정자로 그렸다. 컵 표면의 여백은 아직도 널널하다. 내말은 1회용 컵은 50번 까지 재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중단하였다. ‘소탐대실’이라는 단어가 나도 할 말이 있다고 손을 들고 나온 참이었다. ‘내가 말하는 소탐대실은 그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멈췄다. 상대방이, 나의 상급자가, 회사의 경영자가 큰일을 하려면 적은 것 아니 작은 것은 과감히 버리라는 주창이었다. 이것이 책에 나오는 소탐대실이라는 단어의 원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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