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내장산 서래봉

꿈꾸는 세상살이 2006. 5. 16. 12:57
1763내장산 서래봉 /한호철

2004년 10월 31일 일요일. 오늘은 내장산을 찾았다.
가을에 생각나는 것 중에는 단풍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가을의 단풍은 역시 정읍 내장산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내장산을 가을 단풍철에 찾는 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그만큼 많은 인파가 모여든다는 표현이 더 구체적일 것이다.
내장산의 단풍은 대체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가 절정을 이룬다. 마침 오늘은 그 10월의 마지막 날 31일이고 휴일인지라 내장산 단풍구경으로는 아주 좋은 날이었다. 게다가 날씨도 화창하고 낮 기온은 20도 까지 오른다니 야외 활동하기에도 부담이 없을 듯 했다.
서둘러서 아침밥을 먹고 나선 것은 아침 9시 10분. 부지런히 달려가니 내장산에 지구를 알리는 입구 도로에는 10시 30분에 도착하였다. 평상시는 여기부터 내장산 관리사무소까지 가는데 약 10분이면 족하다.
그러나 때가 때인 만큼 각오는 하였었지만, 그래도 밀리는 차들로 인하여 마음이 불안해지고 있다. 그런 중에도 앞차와의 간격을 넓게 띄우고 가는 차가 있을 때, 뒤에서 따라 가면 괜시리 짜증이 난다. 만약 그 사이로 누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그 사람 때문에 빨리 갈 수 없는 것 같아서 슬그머니 화도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밀고 밀리면서 도착한 곳은 서쪽 주차장이다. 이 때 시각은 12시를 알린 뒤다. 가는 길은 주차요금을 아끼려는 실속파들이 길가에 주차를 해 놓은 것이 많이 있었다. 약간의 공터만 있으면 도로를 비껴서 주차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사실 주차요금을 아끼려 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운동을 하기 위하여 그런 것이라고 생각도 해 본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항상 다니는 내장산의 봉우리보다는 인근의 무명 봉우리를 찾아 오르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변명도 해 본다.
그러는 중에 어렵사리 도착한 주차장이었지만, 주차요금은 비싸지 않더라는 예전의 기억으로 위안을 삼으며 무리한 주차를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주차요금을 받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지자체에서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일환으로 주차무료를 내세운 곳이 몇 군데 있었던 기억이 났다. 오늘 같은 날 전과 같이 주차요금을 받았다면, 아마도 일년 관리비는 충당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쯤 되면 무료주차 방법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전략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 하나, 서쪽의 서래봉 쪽에서는 별도로 관리하는 문화재가 없으니 입장료 외에 다른 문화재 관리비를 내야 되느냐 마느냐하는 시빗거리도 없는 곳이다. 그리고 나도 서래봉 쪽으로는 처음 가보는 등산코스이다.
더구나 인근에 살면서도 단풍 성수기에 내장산을 찾아보기는 처음이다. 앞에서와 같이 차에 밀리고 사람에 부딪쳐서 즐거운 산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변명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러다가 내장산 단풍을 영원히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과감히 나선 산행이었던 것이다.
동학혁명 기념탑이 있는 서쪽 주차장은, 호남고속도로의 새로 생긴 내장산 IC에서 들어오는 곳이므로 더 많은 인파가 모였다고 생각되었다. 여기서 시작되는 등산은 서래봉이 가장 가까운 코스다. 이 서래봉은 높이는 약 622m 로 그리 높지는 않은 봉이다.
내장산 국립공원의 봉우리들은 대체로 600~700 m 고지로 그리 높은 지대는 아니다. 산봉우리는 서래봉에서 시작하여 불출봉 610m, 망해봉 645m, 연지봉 671m, 까치봉 717m, 신선봉 763m, 연지봉 671m, 장군봉 696m 가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 서있다. 그래서 이 삼태기 모양의 깊은 곳에 많은 볼거리가 숨겨져 있다하여 내장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터진 한 곳으로는 금선계곡과 원적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내장저수지로 흘러가는 좁은 문을 만들고 있다. 연지봉 쪽에서 뻗어 내린 원적계곡과 까치봉의 금선폭포에서 시작되는 금선계곡이 만나는 곳에 그 유명한 내장사가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인 내장사 방문은 위의 내장저수지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792번 도로를 따라 가다가, 상가가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원래의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 서기 636년 영은암에서 시작한다. 내장산 내에 존재하는 암자들을 주 절인 이 영은암에서 관리한 것이다. 그 뒤 몇 번을 중건하였으나 1925년에 서래봉 중턱에 있는 백련암으로 본사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1938년에 다시 영은암으로 본사관리를 넘겨주고 만다. 규모가 크고 위치가 좋은 영은암에 내장사라는 이름을 넘기고 만 백련암은, 그 후 벽련암으로 고쳐 부르게 되므로써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차단시키게 되었다.
전국의 유명한 가을 단풍은 설악의 진하고 선명하므로써 현람함과, 피아골전체에 걸쳐 웅장하면서도 은은한 맛과 더불어,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수수하고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친근함이 드는 내장의 단풍이 최고다.
산세가 빼어나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내장산 중 오늘 서래봉 등산은 또 다른 풍경을 주었다. 초입부터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 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느 산과 같이 흙으로 되어 있어 푸근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경사가 급해지고 수입산 원목을 가공하여 만든 목재 계단을 만난다.
아마도 친환경적으로 하기 위하여 목제 계단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하면 고마운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나무는 국내산이 아니며, 좀 더 오랫동안 견디라고 수입목을 선택한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렇지만 국내산 목재의 재질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등산로는 다니는 사람 수에 비해 비교적 좁은 길이다. 어떤 때는 서로 비켜 가기도 부담스러운 곳도 여러 군데 나타났다. 그렇지만 나는 그때마다 조금씩 쉬어 가기도 하고, 오히려 가쁜 숨을 고르는데 중요한 핑계가 되기도 했었다.
내장산의 전체는 비교적 나무가 많은 산 축에 들어간다. 서래봉으로 가는 길은 역시 많은 나무들로 인하여 몸은 피곤했어도 산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정상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올라가는 나는 온 몸이 땀에 젖었다. 역시 오늘 날씨가 덥다고 하더니 그 영향이 크다. 어떤 이들은 덥다고 반 팔 옷차림으로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쉽지 않은 산행이니 땀을 제대로 빼내고 싶었다.
긴 팔 옷을 입고 그 위에 등산조끼를 걸쳤다. 그리고 또 하나 요사이 빼 놓지 않는 것이 있으니 산 위에서 먹을 점심이며 간식용 배낭이다. 사실 넣어 갈 짐이 간단하게 정해져 있으니 굳이 큰 배낭은 필요 없다. 그래서 지금은 쓰지 않는 아이들 책가방을 메고 다니면 된다. 그 가방을 메고 가면서 산에서도 배운다고 생각하니 정말 배울게 많이 생겨난다.
벌써 두 달째 건조한 날씨로 산야가 메말라 있다. 그런데도 않아서 쉬는 사람 중에는 매캐한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자신만 흡족해 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사람이 다니는 등산로는 그냥 걸어가기만 하여도 흙먼지가 날릴 판이다. 그런데 좁은 등산길을 피하여 옆 풀밭을 뛰어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자기는 내려가는 길이니 힘이 저절로 솟아나기도 하겠지만 올라가는 사람은 벌써 힘에 겨운 상태다. 거기다가 자신이 만들어 준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이 난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는 데는 다들 싫어하는 눈치다.
산 속에서도 예절은 필요한 것이다.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아이들 책가방을 메고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
산이 높아 갈수록 경사가 급해진다. 마지막 능선에서는 서래봉과 불출봉으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나는 처음 정했던 목적지 서래봉 쪽으로 향했다.
서래봉을 택한 순간, 눈앞을 가로막고서 다가오는 것은 커다란 바위다. 이 바위 한 개는 보통 집채만한 크기이며 바위바위 줄지어 서 있다. 정말 피할 길도 없이 줄서서 다가오는 바위 봉우리이니 영락없이 서래봉이다.
그러나 이 바위 숲을 헤치고 더 나가야 마지막 높은 곳에서 서래봉이 기다린다. 역시 바위 병풍을 넘어 가는 방법은 인공계단 밖에는 없다. 원채 큰 바위인지라 그 바위를 넘는 계단은 경사가 아주 급하다. 그러니 누어 있던 계단이 일어서서 다가 와야만 다음 코스로 갈 수가 있다. 역시 서래봉일 수 밖에 없는 순간이다.
아마 천국에 가는 계단이 이럴까 생각나도록 좁고 가파르다. 오르고 내리는 철제 계단이 따로 만들어져 같이 붙어있다. 오르는 계단은 앵글로 되어 있어서 발 디디는 계단참이 좁다. 대신 내려오는 계단은 발 디디기 편하라고 넓은 무늬철판으로 되어있다. 아주 세심한 배려인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오르는 계단은 기둥이 많이 부식되어 있어서 흔들흔들하여 위험한 곳도 있다. 어떤 기둥은 흙에 닿은 곳이 완전히 부식되어 떨어져 나간 곳마저 있었다.
아마도 오르는 계단은 처음에 만든 것이고, 그 후에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계단의 수요가 늘어나니 계단하나를 더 만든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나중에 만든 것은 제작비용보다도 등산객의 안전을 위하여 좀더 견고하고 편리하게 만든 것이 바로 내려가는 계단이 된 것 또한 확실하다.
서래봉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풍광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다. 빽빽이 들어찬 숲이 발아래 있어 나무를 보고 싶어도 보이는 것은 숲뿐이다. 그 숲이 지금 변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내장산이라 하더라도 빨간 단풍나무는 내장산 관리사무소에서 내장사로 들어가는 길과 예의 792번 도로를 따라 추령으로 가는 코스에 많이 있다. 대신 산 정상에서 보는 숲은 역시 형형색색의 제각각이다.
도화지에는 어느 빈 점하나 없이 색칠을 했으니, 미술 선생님이 보시면 아마 야단을 치실 일이다. 그러기에 재빨리 어느 한 곳만을 택하여 다른 진한 색으로 덧칠 해 본다. 그 곳이 바로 내장사이다. 내장사의 기와지붕이 진한 회색을 띠고 있지만, 주위는 온 통 제 멋대로다. 단지 내장사의 마당에 있는 흙만이 지붕의 어두움을 떨쳐보려는 듯 밝은 색깔을 연신 뿜어내고 있다.
두 임금을 섬기지 못하여 아직도 고집을 부리는 나무가 있으니 사철 푸른 소나무다. 그리고 측백도 있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편백도 있고 잣나무도 있을 것이다. 혹시 게으르고 키 큰 은사시나 세콰이어가 그들 틈바구니에 끼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있음으로해서 산은 한 가지 색이 아니고 여러 색색이 되었다. 때로는 고집도 부리고 볼 일이다. 세상은 노랗고, 빨갛고, 검고 푸르다. 그리고 하늘은 눈이 부시고 파랗다.
크레파스의 빨간색, 노란색, 푸른색이 아니어서 조금은 서운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나무와 숲을 보는 정도의 다른 차원이다. 흙과 나무 계단, 그리고 철제 계단을 모두 거치면서 힘이 들기는 했었지만 오늘도 좋은 등산이었다는 만족감이 든다. 정말 오늘은 숲을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늘방석  (0) 2006.05.16
선운산 선운사  (0) 2006.05.16
배산을 돌아보며  (0) 2006.05.16
모산 미술관에서  (0) 2006.05.16
황등제를 그리며  (0) 200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