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약주의 한계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3. 15:29
 

 약주의 한계 /한 호철


 요즈음 연말이 다가오면서 각종 모임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술도 많이 먹게 된다. 전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지만 조금 지나면 술이 술을 먹게 되고, 지나치게 되면 술이 사람을 먹게 된다는 말이 있다. 요즈음은 이 말을 각색하여 처음에는 술을 마시면 여우가 되지만, 조금 지나면 늑대가 되고, 지나치면 돼지가 된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러한 술은 적당히 마시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긴장이 완화되기도 하며 분위기도 좋아 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약주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약을 많이 먹으면 몸의 균형이 파괴되듯이, 이 술도 지나치면 몸의  조화가 깨지게 된다.

 여우는 사탕발림 말을 잘하고 순간의 분위기를 파악하여 임기응변에 강하다. 우리가 술을 먹으면 남을 칭찬하고,  듣기 좋게 말하며, 호탕하게 하는 행동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늑대는 육식동물로서 공격적이고,  보기만 하여도 긴장감이 들며, 금방이라도 피비린내가 날 것 같은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가 연상된다. 우리의 약주가 지나치면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려 시비가 되고, 잘 잘못을 따지는 분위기가 된다. 그러다가 도가 지나치면 돼지가 되어 아무데나 뒹굴고, 음식물도 여기저기 흘리고, 남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기 의사대로만 하려고 하는 개인주의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돼지는 모든 사람들이 꺼려한다.

 자신이 술을 마시는데는 같이 호응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친구끼리 같이 가기도 하고,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대작할 사람을 선정하기도 하는 가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술값이 많이 들므로 저렴하게 자신만을 위해줄 사람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술 먹어주는 아르바이트라는 새로운 풍속을 탄생시켰다. 물론 나이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알바를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그렇게까지 변질될까 두렵다. 그렇게 해서 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가 될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다보면 벌써 다음날 아침이 된다. 그러면 그에 맞는 비용을 지불하고 그 상태에서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는 술을 기분 좋으라고 먹을 것인가 아니면 술을 없애기 위해서 먹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술이 사람을 못 살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마실 것인가는 각자가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어느 선택도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은 있다. 음식물을 여기저기 아무데나 흘리고 다닌다든지, 늑대처럼 지나가는 모든 약한 동물들을 건드려 본다든지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왜냐면 비록 힘이 약하더라도 상대방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얄미운 여우가 되어서도 안 된다. 항상 남의 눈치를 보면서 말하고, 아니면서도 그런 척, 그러면서도 아닌 척 한다든지, 분위기를 본질과 다르게 호도 한다든지 왜곡 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약이 제대로 쓰여져서 아픈 곳이 낫게 하려면, 처방도 중요하고 때맞추어 적당량을 먹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처럼, 약주 또한 지켜야할 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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