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와 무청 시래기
무와 무청 시래기
무의 머리를 잘라냈다. 이른바 무청이다. 요즘에는 무청을 잘라내고 남는 무를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본래 무가 뿌리채소라는데 그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무는 뿌리와 이파리로 나뉜다. 김장용 무는 둥글둥글하고 잔뿌리와 흠이 없는 게 상품이다. 특히 길이가 20cm 이하인 조선무라야 제 맛이 난다. 잎도 초장이 20cm정도, 엽수는 10매에서 12매 정도는 되어야 좋은 무이다.
예전에는 무 뿌리를 먹고 줄기는 버리는 예가 허다하였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이파리를 즐겨찾게 되었는데 잘 말린 잎을 무시래기라고 부른다. 이 무청에는 비타민 A와 C가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칼슘, 나트륨 등의 미네랄도 풍부한 식품이다. 또한 비타민B1, B2는 무 뿌리보다도 6배 이상 10배까지 들어있는 훌륭한 식품이다. 최근에는 무청을 이용한 간암억제 효능을 발표하는가 하면, 해독효소의 활성화를 돕는다는 보고도 나왔다.
무 자체에도 칼슘과 인 등이 풍부하여 골다공증 예방에 좋고, 철분과 무기 섬유질은 변비를 예방하는 좋은 식품이다.
배추김치보다도 앞서 무김치를 담았다. 우선 무를 뽑아 놓은 밭에서 대충 누런 잎을 떼어내고 수돗가로 날랐다. 마당가 다섯 평 남짓한 무밭에서 뽑은 무를 쌓아놓으니 한 가득이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무를 다듬는데 바람독이 따로 없다. 여럿이 다듬으면 금방이겠지만 굳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람막이를 쳤다. 하루를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라는 말이 이런데서 나왔나보다.
무청을 자르고, 무 껍질을 벗겼다. 마주 앉은 사람이 무 표면에 칼날을 대고 긁어서 껍질을 벗기고, 어떤 사람은 반쯤 닳아진 달챙이로 다듬기도 한다. 무엇으로든 득득득 긁어서 얇게 껍질을 벗기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잔뿌리도 깨끗이 제거한다. 그 다음 사람은 무청을 다듬는다. 무청은 너무나 바짝 자르면 보관 중에 무가 썩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자르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무청이 개별분리 되지 않을 정도로 잘라야 한다. 그렇다고 무청이 너무 많이 남아있으면 미처 먹기도 전에 새싹이 돋으므로 그 조절을 잘 해야 하는 것이다.
무청은 가을 햇볕에 잘 말려 겨울철 비상식량으로 활용하며, 푸른 채소가 부족한 시기에 비타민과 미네랄의 공급원으로 대체하면 좋다. 나는 무청보다 무를 더 좋아하지만, 아내는 무보다 무청을 더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무다.
무청은 그냥 말려서 먹기도 하지만, 한 번 삶아서 말린 후 먹는 방법도 있다. 그냥 말리는 것보다 삶은 것이 훨씬 부드러워 먹기도 좋고 소화 흡수도 잘된다. 거기다가 살짝 된장을 풀면 그야말로 토종 시래기 된장국이 되는데 이 맛은 신토불이로 얽힌 식단이 되는 것이다. 그냥 된장국이 아닌 매운탕 시래기로는 삶지 않고 생잎을 말린 것이 쫄깃쫄깃하니 씹는 맛을 더해준다. 어릴 적에는 채썰어 넣은 무밥도 먹었었는데...
무를 다듬느라니 시큼한 무 깍두기를 씹은 듯 입안에 침이 고인다. 뜨거운 설렁탕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것을 떠올리는데, 벌써 무 다듬기가 끝나버렸다. 아직 다 먹지도 못한 설렁탕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아쉬움을 달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눈앞의 줄 위에 시래기가 널려있다. 빈틈없이 늘어서있는 것이 마치 진초록 커튼을 널어놓은 듯하다. 가마솥에는 아직 물이 끓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래기가 널려져 있다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발이 저리는 것을 겨우 참으며 버티고 서 있는데, 머리는 아직도 어질어질하다. 아! 현기증이 이런 것인가. 그럼 나도 철분이 풍부한 무시래기 된장국을 먹어야할 모양이다. 지금까지 꼼짝 않고 다듬은 무는 남이 아닌 바로 나를 위한 보약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