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세상살이 2008. 1. 4. 21:42
 

솥 닦는 여인

어머니 집에는 한데에 가마솥이 걸려있는데 그 솥은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예전 같으면 더운 여름날 구들을 덥히지 않도록 임시로 한데 솥을 걸었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온돌에 난방 하는 가정이 없으니 구들을 덥힐 걱정도 없어졌고, 가마솥에 밥을 할 정도로 많은 밥도 필요 없으니 그럴 걱정 또한 없어졌다. 그래도 이 솥에는 시도 때도 없이 불을 때댔다. 소여물을 삶을 때에도 불을 땠고, 닭털을 뽑을 때에도 물을 끓였다. 쑥을 보관할 때도 삶았고, 무시래기를 데칠 때에도 찾았다. 농사철이 끝나면 메주를 띠우기 위하여 메주콩도 삶았다.

한데 걸린 검정 가마솥은 대접도 못 받으면서 항상 그렇게 불세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돼지고기를 삶아 수육을 만든다거나, 소족을 삶아 도가니탕을 끓일 때에는 한데 솥은 사용하지 않았다. 향기 나는 음식이나 맛있는 음식을 장만할 때는 복잡하더라도 주방에 있는 작은 솥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가마솥은 거칠고 푸짐한 것들 차지가 되고 말았다. 하긴 이정도 되면 홀대받고도 울지 않을 솥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검정 가마솥에 콩을 반이나 넣고 물을 부었다. 예전에는 손 없는 날을 골라 메주콩을 찧었지만, 요즘은 그런 것 저런 것 따지지도 않았고 그냥 편한 날을 골라잡고 있었다. 툇마루에 앉아 메주를 만들 정도의 따뜻한 날이면 금상첨화다. 오히려 날이 쌀쌀하여 못된 균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던 옛날과 비교하면 제 맛이나 들지 몰라 걱정이 될 판이다.

불이 채 붙지도 않은 입구의 장작더미는 무엇이 그리 뜨거운지 자꾸만 밖으로 기어 나온다. 뜨거움에 기진하여 게거품을 물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하던 놈들이 어머니의 발 뿌리에 채여 다시 아궁이 속으로 처박힌다. 벌써 몇 년이나 말라버려 물기라고는 한 방울도 없을 것 같던 장작이 마지막 힘을 모아 발악을 하며 버티고 있다. 이리 뒤틀고 저리 비틀며 용을 쓰다가 생 똥을 싸지만 그것도 피식하고 헛방귀에 그치고 만다. 하긴 그간 먹고 마신 것이 없으니 뭐를 내놓을 것이 있을 터인가. 사람 같았으면 벌써 맥없이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솥에서는 콩들이 제 몸집 부풀리기에 정신들이 없다. 누가 뭐라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건만 열을 받아 붉으락푸르락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어머니는 부뚜막에 걸터앉아 솥뚜껑을 닦아냈다. 차가운 물에 담근 행주를 꽉 짜지도 않고 그냥 물이 줄줄 한 채로 닦으셨다. 솥뚜껑 밑에서는 성난 황소의 콧김처럼 내뿜던 수증기가 방울방울 맺히더니 쪼르르 타고 내린다. 뜨거워서 눈물 흘리는 솥이 안쓰러웠던지 어머니는 연신 솥 등을 쓰다듬으신다. 언젠가 보았던 곱디곱던 그 손이 이제는 거북이등과 같이 투박해졌고, 그 손은 자라 등 위를 휘휘 맴돌고 있다. 여기서 쪼르르 저기서 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이 제법 부산해 보인다. 그러나 물방울은 삼복염천 백사장에 물을 뿌린 듯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린다. 커다란 솥뚜껑위에 먼지가 앉은 것도 아니고 재티가 붙은 것도 아니건만 어머니께서는 닦고 또 닦으셨다.

얼마가 지났을까. 조심스레 솥뚜껑을 밀어재끼니 모락모락 김이 새어 나온다. 솥 안은 온통 하얀 기운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밥이 끓는지 죽이 끓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넣고는 한 주먹 집어 든다. 메주콩이었다.

깜깜한 솥 안에서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졸아드는 물 속에서 얼마나 뜨거웠을까. 가득 찬 수증기로 둘러싸여 혼자 있다는 두려움에 얼마나 외로웠을까. 메주콩도 살아있는 생물임에 틀림없는데 혼자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 있는 콩들은 잘 삶아져서 적당히 물러있었다. 힘을 가하니 그만 항복을 하더니 반으로 쪼개져버린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부대끼고 지친 녀석들인데 무슨 힘이 남아있을 것인가.  

가마솥은 이제 울기를 그쳤다.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콩들이 죽어나갈 것이 불쌍해서 울었는지, 매서운 장작불에 엉덩이가 익을 것이 무서웠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그 울음을 그쳤다. 어쩌면 북적대는 낮이 지나고 외로운 밤이 되면 혼자 있을 서러움에 울었을지도 모른다. 너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없다고 매달리던 것도, 세상에는 너 하나 밖에 없다고 구슬르던 것도   다 소용없음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솥 안 가득 먹을 것을 주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내장까지 싹싹 훑어가는 것이 야속하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마솥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벌써 몇 천 년을 이어온 가마솥의 내력처럼, 아득한 옛 조상 솥으로부터 이어 내려온 전설처럼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듬직하던 내장을 들어낸 것은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도 아니고, 울퉁불퉁 요술방망이를 든 도깨비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용광로처럼 뜨겁고 화산처럼 무서운 솥 안을 휘젓고 다니는 것은 여리고 고운 사람의 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마솥이 알고 있듯이 어머니는 몇 천 년을 이어온 내력처럼, 옛 아득한 시절의 시집살이로부터 내려온 전설처럼 알고 계셨을 것이다. 바로 당신이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 것이다. 한 여름 뙤약볕에서 불을 사르시고 폭풍한설 얼음장 밑에서 수증기를 퍼 올리시는 어머니는, 가마솥이 왜 우는지를 알고 계신 것이다. 

헛간 구석에는 수많은 무청들이 줄을 서 있다. 어제만 해도 싱싱하던 것인데, 그만 어머니의 뜻에 이끌려 삶을 포기한 무청이다. 어머니는 하나하나 줄을 맞춰 세워놓고 각자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떠올랐다 사라지는 끝도 없는 기억처럼 많고 많은 사연으로 엮어놓았다. 즐거운 일, 슬펐던 일, 좋았던 일, 안타깝던 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조각들이 묶여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족의 추억이 아닌 어머니 바로 당신의 아픈 기억들이다. 푸르던 잎이 시래기가 되어가는 것처럼, 어머니는 벌써 누렇게 풀기가 밭아있었다.

솥도 알고 있는데 여태껏 나만 모르고 있었다. 곱고 나긋한 아내는 가마솥을 두려워 하지만, 거칠고 투박한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가마솥을 지배하고 계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