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예쁜 여자들의 공중도덕
내가 집을 나서려 할 때 마침 다른 집의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문에 달려있는 작은 감시창을 통하여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어떤 여자가 보이면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곤 한다. 이른바 여자 훔쳐보는 버릇이다.
내가 지목하는 여자는 제법 예쁘게 생겼다. 거기다가 아직 젊기까지 하다. 이런 여자들은 아무렇게나 차려 입어도 멋있어 보이고,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린다. 그러니 내가 하는 행동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혹시 다른 남자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나, 그렇다고 지금의 내 마음을 뒤집어 보이며 말하기도 쉽지 않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자주 인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을 기억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 있다. 한두 번 만나서는 항상 새로 만나는 사람처럼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긴장하는 편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이것에 떠넘기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 주위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 온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 이웃 간에 이 지경으로 지내나, 어쩌다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면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웃이 새로 이사 오기 전에도 그런 일이 자주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물론 전에 살던 여자도 예쁘고 젊었었다. 말쑥하게 차려 입으면 그런대로 점잖아 보이고 참하게도 생겼었다. 그런데 집 앞에는 가끔씩 생활 쓰레기봉투가 놓여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재활용품이 놓여 있기도 하였다. 그 중에는 제법 쓸 만한 것들도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여자는 내 놓은 재활용품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마 자기가 생각해도 아까운 물건이 들어있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재활용품은 일주일에 한 번만 처리하므로 어쩌다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벌써 보름이 지나가는 결과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집 앞의 쓰레기라는 것이 바로 우리 집 앞의 쓰레기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문만 열면 쓰레기봉투가 ‘저를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 하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냄새야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은 재활용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자기 집의 쓰레기를 밖으로 내 놓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 집으로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파트에서 얽혀진 집의 구조가 서로 마주보든지 나란히 붙어있든지 하는 때문이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재활용품이 길게는 한 달이 되도록 방치되는가 하면, 생활 쓰레기도 1주일이 지나도록 자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때면 나는 못된 성질이 발동되어 주머니를 뒤집어 털기도 하였다. 아파트 내부에도 이동식 쓰레기 적환장이 있으니 누구라도 버릴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한 결과였다.
이런 일은 잊어버릴 만하면 가끔씩 일어났다. 나는 이럴 때마다 내다 놓은 사람을 찾아서 얘기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내는 내버려 두라고 막는다. 이런 것으로 통행에 큰 방해를 준다거나,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불편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내버려 두자고 말한다. 어렵게 설명하고 힘들게 얘기해도 들어주지 않으면 아니함만 못하니 그냥 두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요즘 사회분위기가 개인주의인데 서로 몸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도 우리에게 손해라는 지론이다. 어떤 때 보면 같은 여자끼리는 말은 안 해도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냥 못 이기는 척 넘어갔지만, 따지고 보면 아내의 말에는 현재의 사회를 대변하는 논리가 들어있는 것 같아 씁쓸하였다.
어떤 여인들은 하나같이 쓰레기에 대한 애착심이 많아 보였다. 그들은 버리면 쓰레기요 모으면 자원이라는 말을 철저히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현재 살고 계신 분, 그리고 그 전에 사시던 분, 그보다 더 앞에 사신 분도 그랬으니 내리 10여 년 동안 한결 같이 얼굴이 예쁘신 분들만 살았던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면 다음에 어떤 마나님이 오셔도 아마 똑같을 것이니, 차라리 내가 이사를 해야 더 빨리 해결될 것이라는 푸념도 해보았다.
바로 전에 살던 분은 대한민국의 중학교 가정 선생님이셨다.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여자 선생님은 혼자서 그렇게 사시다가 떠나셨다. 출퇴근 시간에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마주친 선생님은 깔끔하고 세련되게 보였다. 하긴 그러니 쓰레기봉투를 쉽게 들고 다니지 못하셨을 법도 하다.
그런데 다음에 오신 분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라는 것일 게다.
한국의 미래를 짊어 질 동량들을 가르치는 분이시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는가 생각도 했었다. 아마도 다른 뜻이 있어서 일부러 그러실 거라고 생각도 해 보았었다. 그런데도 계속하여 눈에 거슬리는 것은 어찌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고개 한 번 돌리면 될 것인데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도 이제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서만 보고 지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미친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고개를 들고 다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내가 이사를 가는 것도 그렇다고 이사를 가시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계단에 놓여있는 재활용품을 보면서, 저 것은 예쁜 여자가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기를 바래본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나의 커다란 오해였기를 바래본다. 틀림없이 건망증이 심하신 어떤 분이 잘못 갔다 놓은 것이라는 추리를 해본다. 그리고 지금쯤은 저 물건을 찾느라 안절부절 하실 것을 생각해본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예쁜 여자들은 예의 바르고 공중도덕도 잘 지킨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