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나
금요일 저녁 모 교육청의 학무과장으로 있는 친구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바로 다음주로 다가온 이번 17대 대선 이야기로 흘러들었다. 평소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교육자적 정신을 잘 알고 있었던 나도 참 당혹스럽다는 말 외에 아무런 대안도 없이 듣기만 하였다. 다음은 그 친구의 얘기를 옮겨본다.
어느 날 조용하던 사무실에 시끄러운 민원인이 찾아왔다. 그 여인은 자기 자식을 전학시키는데 왜 허락해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처음 들어설 때부터 걸음걸이하며 말소리며 그 모든 행동거지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겨우겨우 진정시키고 물어보니 그 원인은 아주 간단한 거였다.
그 민원인은 가진 것도 없고 남보다 내세울 것도 없어서 그냥 농사나 짓고 사는 사람이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면 단위 지역에서 그냥저냥 사는데 아이들이 학교공부도 잘하고 적응도 잘하여 자기는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단다.
그것은 남들처럼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바로 학교가 문제였다고 한다. 시골은 학생 수도 적고 선생님들도 성의가 부족하여 자기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학년이 한 반뿐인 작은 학교라서 아이의 경쟁상대가 없고, 주위에는 온통 일을 하거나 놀기만 하는 학생들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어려운 결심을 하고 읍내로 주민등록까지 옮겼다. 이렇게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쳤는데도 학교에서는 전학을 안 시켜주었고, 따져 물으니 교육청에서 전학을 허락해주지 말라고 했단다.
교육청은 어떤 특정인에게 전학을 허락해주지 말라 어쩌라 할 권리도 없고 그런 규정도 없다고 설명하였지만 이미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쉽지 않았다. 할 수없이 학생의 인적사항을 듣고 자세히 알아보니 그 학생은 전학을 위한 위장전입자로 확인되었다.
시골 학교에서 한 명의 학생이라도 아쉬운 판에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 전학을 가겠다고 하니 누구한테 물어보고 조사 좀 해 보았나보다. 그랬더니 혹시나 했던 것처럼 그냥 주소만 옮겨다 놓은 위장 전입이었다. 교육청은 위장전입자는 전학을 허용하지 못하도록 공문을 보낸 상태이고, 학교에서는 전학을 막는 방편으로 아주 손쉬운 그 핑계를 댄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었음에도, 이 여인은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모든 서류가 완벽한데 전학을 안 시켜주는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으러 올 생각을 했으니 기세가 대단한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실제로 이사도 안 간 사람이 주민등록만 옮기고 전학을 해 달라고 하면 이것은 명백한 법위반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또한 현재 다니는 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당신의 불만을 해소 할 것인지 생각해보자고 하여도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럼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는 뭐냐고 물으니 그 답은 간단하였다.
그냥 이 서류대로 전학을 허락한다는 한 마디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째서 당신은 법을 어겨가면서 까지 전학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해댔다. 대통령을 해보겠다는 이명박이도 위장전입을 하는데, 전학 좀 해보겠다는 우리는 왜 안 되냐고 반문해왔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당신은 당신이지 않느냐고 설명을 하여도 그런게 어디 있느냐고,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냐고 따져왔다. 그 민원인을 설득하는 것보다 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뭔가를 가라앉히는 것이 더 급하게 여겨졌다. 참고 또 참다가 건네준 말을 들은 민원인은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갔다.
우리도 그 친구의 마지막 말 한 마디가 궁금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물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교육자입니다. 국가의 미래를 담당할 당신의 자녀같이 훌륭한 학생에게 위장전입을 하라고 가르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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