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마지막 설교

꿈꾸는 세상살이 2008. 10. 16. 22:52

마지막 설교

세상의 종말이 온 것도 아니고, 내가 죽어서 더 이상 설교를 못 듣는 것도 아니지만 오늘은 마지막 설교가 있었다. 말이 거창한 이 설교는 새로운 예배당으로 이전을 하기로 하였던 작년 겨울부터 미뤄진 것이었다. 사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오래 전부터 새로운 성전 건축을 계획하고 있었다. 식구들이 늘어나서 예배드리는 것도 불편하게 느낄 정도가 되었던 때문이었다. 교통도 편리하고 시내의 중심지에 위치한 덕인지 신도들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혹시나 주변에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었다면 핑계라도 댔겠지만, 시청을 위주로 한 오래된 주택들뿐이니 넘쳐나는 자원의 이삭줍기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요즘 교회가 지어 놓기만 하면 저절로 부흥하는 것이 아닌 때에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것도 겨우 37년 역사의 소도시 무명 교회였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갑자기 불어나는 신도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 오가는 것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각종 행사의 모든 것이 불편하고 복잡하기만 하였다. 급기야 교회 주변의 주택을 매입하여 부지를 마련하고 설계도까지 완성하였다.

그러던 차에 중대 변수가 생겼다. 시내에 있는 한 교회가 새로운 곳으로 이전을 하는데 건물이 남게 된 것이다. 지가가 높게 형성된 구도심의 중심에 자리한 이 교회를 사서 이사할만한 단체나 교회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우리가매입하기로 결정되었다.

지금까지 이름깨나 있는 교회들은 새로운 성전을 지으면서 현재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 하긴 앞으로 몇 십 년을 살아야 하니 향후를 내다보고 짓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건축비용을 신도들에게 할당한다는데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꼴이 못마땅하여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그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그럼에도 크고 화려한 교회는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어쩌다가 성대한 교회들을 보면 우선 가슴이 답답해져 왔음을 감출 수 없다. 어쩌면 우리교회도 그런 부담이 생길 수 있고,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할당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현재의 교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되었다. 교회 정문에 현수막도 내걸었다. 다음주부터는 새로운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니 착오 없으라는 내용이다. 정말 이사를 하기는 할까. 들뜬 기다림 속에 몇 번이나 연기를 하였던 날이니 실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오늘 아침까지도 이전을 하는데 드는 비용을 얼마씩 부담 하여야 한다는 통보가 없었으니 거기에서 위안을 얻는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며 믿음을 가지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교회에 가서 물질로 얼룩지고 물질 때문에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왔다. 여러 종류의 헌금도 그렇거니와 특별히 교회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특별 헌금은 많은 논제로 등장하였던 게 사실이다. 물론 내세에 돌아갈 천당은 종교적 차원이니 논외로 한다면 말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1%의 부자가 99%의 서민을 지배한다고 하던데, 교회마저 1% 가진 자의 의사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의 기능을 상실한 뒤 일 것이다. 나는 오늘 마지막 설교를 듣는 내내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죽는 날의 마지막 설교도 이렇게 평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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