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 본 사람들
벽에는 많은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아예 넓은 판에다가 종이를 대고 그 위에 이런 저런 내용을 적은 후 사진들을 첨부하였다. 길게 늘어진 복도를 오며가며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처음 오거나 한두 번째 오는 사람들은 병실을 찾고 사람을 찾기에 바빠 짬을 낼 수가 없다.
그러나 매일같이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제 본 사진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다 본 후에는 처음으로 돌아와서 다시 들여다보곤 한다. 나는 벽에 붙은 사진을 살펴보면서 마치 안면이 있는 인물을 찾아내려는 듯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처음 사진을 볼 때에는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는데, 사진의 내용을 위우다시피 된 지금에 와서는 아는 얼굴들이 간혹 보인다.
그분들에게 전에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이 병원에 와서 처음 보았단다. 어느새 나도 이 병원의 단골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침대에 누워계셨다. 하긴 아픈 다리가 아직 낫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부러진 뼈의 마찰을 막기 위하여 다리를 매달아 놓았으니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침대 머리맡에서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는 나에게 다른 묘안이 있을 리도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던 병실에 사진 속 그분이 오셨다. 할머니 저녁에는 죽도 많이 드셨고, 뭐 먹고 싶은 거 있으세요? 아니. 가만있자, 잠깐 볼까요? 가만이 있으면 욕창 생겨서 못써요. 그분은 침대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고는 이리저리 휘저어 대었다. 올록볼록 튀어나온 매트는 욕창을 방지하기 위하여 고안한 치료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적인 침대라도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환자에게 매트는 또 하나의 편리한 고문이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어떻게 하다가 겨우 참을 만하면 그냥 포기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렇게 들쑤셔놓으면 새로운 자리에 맞혀서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아이고 죽겄다. 나 좀 내버려 둬. 어머니는 괴로운 듯 만사를 귀찮아하셨다.
한바탕 광풍이 불고 간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는 다시 들어왔다. 어머니 어때요. 불편한점은 없지요? 응, 없어. 왜 안 불편해. 벌써 몇 달째 누워있는데. 어디, 좀 볼까요? 그분은 이마에 손을 얹어 열을 감지하더니 맥도 짚어 보았다. 할머니! 괜찮아, 아주 좋아. 거봐, 불편한거 없다니까.
언제부터 틀어져 있었는지도 모르는 텔레비전에서는 일일 연속극을 시작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텔레비전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시야가 뚜렷하지도 않지만 그나마 화면을 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귀마저 난청이니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다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병실에서 마냥 크게 틀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할머니 연속극 봐? 응. 재미있어? 응. 내 생각으로는 잘 들리지도 않고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연속극인데 재미있다고 하신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미 마음으로 보는 방법을 터득하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난 가을에 든 단풍이 아직도 안 떨어지고 있네. 그런게, 결혼혔으면 벌써 떨어졌지. 좋아하는 사람하고 결혼 할려고 헌게 아직까지 있지. 할머니! 근데 안 아퍼? 왜 안 아퍼, 아퍼 죽겄어. 근데, 왜 아프다고 안해? 인제 왔응게 아프다고 허잔여. 많이 아퍼? 응. 알았어, 간호사보고 주사 좀 놓으라고 할게. 응, 빨리 가. 왜? 내가 싫어? 아니! 연속극 보게. 진통제를 맞아야 할 정도로 아픈 다리도 연속극 앞에서는 잠시 쉬고 있었나보다. 병실에서의 텔레비전은 시끄럽고 복잡한 치료 보조기구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다. 병실을 찾는 여러 사람들도 각자가 맡은 일이 따로 있다는 것을 간파하신 것이었다. 그중에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다. 조석으로 둘러보고 가장 안타까운척하는 나였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맙다는 말과 잘 부탁한다는 말뿐이었다.
연속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간호사가 들어왔다. 할머니! 많이 아펐어요? 응, 아퍼 죽겄어. 아프지 말라고 내가 주사까지 놨는데 왜 아프댜. 주사 논다고 말로만 논거 아녀? 할머니는 내가 그렇게 미워? 아프지 말라고 주사 놓고 약주는 나를 미워하다니. 아녀, 아퍼서 그러지 미워서 그런거 아녀. 정말? 그럼 내가 아프지 말라고 호~ 해 드릴께요.
낮에는 낮대로 청소도 하고 이발이며 목욕도하는 등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 야간에는 야간대로 할 일이 따로 있었다. 그렇게 많은 일중에서 나에게 맡겨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오며가며 사진을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으며, 누구에게 방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사진 속에서는 조금 전까지도 병실을 드나들던 여러 사람들이 허리 굽혀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진 속의 얼굴은 나에게 있어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되어있었다. 그들은 남을 돕는데 있어 자신의 몸처럼 살피겠다는 호선식도 하였고, 그 약속대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봉사도 하고, 삶의 희망을 뿌리는 전도사였다.
자신의 몸이 고되고 힘들더라도 남이 행복해하고 즐거워질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고맙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뿐인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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