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보고나서 생각하기

2009.05.23 민주주의가 죽었다.

꿈꾸는 세상살이 2009. 5. 23. 21:48

2009.05.23 민주주의가 죽었다.

이제 살아있는 것은 권력뿐이다.

 

다른 정부는 참여정부니 국민의 정부니 또는 문민의 정부니 해가면서 뭔가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며 미래를 보듬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듯 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는 그냥 이명박정부라고 한다고 하였다. 오랜 민주주의를 표방해온 미국은 클린턴 정부, 부시 정부, 오바마 정부니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그렇게 불러온 하나의 표현방식이다. 우리가 정부를 불러온 방식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관습이다. 혹시 미국의 방식이 좋아서 그랬다면 우리 것보다 미국식을 좋아하는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정부라는 단어가 가지는 것은 이명박 개인의 가정꾸리듯 한다는 것인지, 또 다른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것 같은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엄밀히 따지면 정부는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행정부로 나눈다. 이것이 삼권분립이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기는 한데,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엄연히 행정부의 수장이며 성격이 다른 입법부와 사법부는 빼고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사법부와 입법부도 넓은 의미의 행정부에 포함시킬 수도 있기는 하지만 원칙을 얘기하는 삼권분립에서는 다른 의미이다.

 

혹자는 '노무현은 무식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가 번듯한 대학 졸업장이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노무현은 무식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학식을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면 지식은 물론 그의 머리 속에 든 학식도 풍부하였다고 본다. 다만 세인이 얘기하는 졸업장이 없다고 한다면 맞는 말일 것이다.

그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도 공부는 잘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상고라고 하여도 3년 장학생으로 추천하기에 충분하였고, 욕심내기에 부족하지 않았던 것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독학으로 군대 갔다 온 기간을 합하여 9년만에 고시합격하였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식하지는 않았다고 보인다. 어느 누가 중고등학교때 공부를 못하다가 군에 갔다 온 뒤로 갑자기 공부한다고 몇 년만에 고시합격하겠는가. 이것은 보통의 경우 그를 무시하던 판검사들이 생각해도, 수재들이 간다던 법대에서 열심히 배우고 몇 년을 노력해도 어려운 시험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촌놈 상고출신 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보니 열등감을 느껴서 그랬다면 그것 또한 생각해볼 일이다. 가난하면 사람도 아닌가? 한 마디에 꺼뻑 죽는 미국의 오바마는 더 가난했었는데...

또 하나, '변호사 주제에' 하는 말들을 하였는데, 자세히 보면 그도 초기에 법관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인권변호사로 나서기 위해서 법복을 벗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면 무식한 것도 아니고, 공부를 못해서 변호사가 된 것도 아니니 양식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를 몰아세우는 것에 뭔가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노 전대통령 재임시에 검찰과의 대화에서 이쯤되면 막가자는 것이지요? 했는데, 그래도 검찰들은 무사하였다. 만약 현재의 정부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것은 당시 노무현이 민주주의의 신봉자였고 인권을 중시하였으며, 자기는 대통령이지만 검사들이 한 말에 꼬투리를 잡아서 일일이 간섭하거나 보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는 원래도 지금도 노사모 회원이 아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인간 노무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야 말로 당시 민주주의에서 어쩌다 감정이 격하여 실수한 것을 가지고 원래 그런 사람인양 몰아세우지 않으며, 그들을 감싸 안을 줄 아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라 생각되었다. 나아가 그러기 이전부터 사람으로서 개인의 인격을 철저히 존중해 준다는 신념이 확고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또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신에 속한다. 그러나 그러한 실수를, 비슷한 실수를 밥먹듯 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계획적인 행동이 되고 만다. 어떤 사람은 자그마한 실수도 자기 잘못이라 말하면서 자신의 허물을 부끄러워 한다. 또 커다란 실수가 나오면 정말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평소 신념과도 연관이 있다.

보통의 양식이 있는 사람들은 잘하려 했는데 잘못되었으면 부끄러운 일이 된다. 그러나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없이 그냥 목적만 달성하려 하다가 실수를 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다 당하는 그냥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그런 결과는 남을 의식하지도 않고, 남을 배려하지도 않는다. 다만 바라는 목적이 있을 뿐이고, 작성된 계획을 달성하면 그만이다. 이런 일들은 별 생각없이 하는 행동이니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아무도 모르며, 심지어 귀신도 모르는 일이되고 만다. 그래서 요즘같은 세상에도 귀신이 곡할 일이 많이 생겨난다.

어쩐 연유에서인지 모르게 우리나라의 행정수도는 오랜 관습으로 서울에만 있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고, 주어가 없으면 어떤 해석에서 단정지을 수없다는 판례도 나왔다. 이후 어떤 변호사가 이런 판례를 인용하여 변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이 글에 있는 모든 주어를 지운다. 다시 읽어보고 주어를 찾아서 지웠다. 그런데도 혹시 보이는 주어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내가 쓴 것이 아님을 밝힌다. 남아있는 주어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분명 귀신이 와서 그런 짓을 한 것일게다.

 

그나저나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할 고민이 생겼다. 여기서 봉하까지 거리가 먼데, 봉하에 가자고 하기때문이다. 이런 저런 핑계를 찾아보았다. 가더라도 우리만 가면 기름값 아까우니 다른 누가있는지 알아보자고. 그러면서 여러 사람이 간다고 하여 버스를 하나 빌리기를 희망해본다. 노사모도 아닌데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하고,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져서 마음이 우울하고 잠을 설칠 정도다.

 

토요일에 문학회가 있었다. 어떤 이는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붓이 아닌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여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펜이 많이 무디어져서 칼보다 강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칼은 날마다 갈고 닦는데, 펜은 처음 산 그대로 이니 날이 무디어진 것은 당연하다. 이런 펜으로는 감동적인 글을 쓸 수가 없다. 작은 펜도 수시로 갈고 닦아야 좋은 글이 쓰여질 것이다. 잉크가 메마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 펜에 잉크가 아닌 오물을 묻혀서 쓰면, 그 글도 오물투성이 글이 되고 말 것이다.

 

글쓰는 사람들은 삼가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써야 한다. 후세에 남길 글이니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역사에 남길 글이 아니더라도, 글은 진정 작자의 저 깊은 곳 양심을 내 보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땅 속에 남아있는 뿌리에서 빨리 새 싹이 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