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요 중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있다. 이 둘은 서로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른이 되어서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고, 둘은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둘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서로를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상대방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진정으로 상대가 원하는 행동을 해주지 못하면서, 거기다가 내 마음의 진실도 전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대목이다. 혹시나 상대방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까봐, 혹시 상대방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는 아닐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비록 술에 취해 이 가요를 부르더라도, 한낱 철부지 풋사랑이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서 무릎 꿇고 마는 좌절이라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함부로 빠진 사랑의 말로라고 경고해서도 안 된다. 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비웃으며 용기 없음을 탓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아무나 부르는 흥겨운 노랫가락 ‘갑돌이와 갑순이’를 통해서 배려를 배우고 공중질서를 배워야한다. 내가 좋다고 모든 것을 행동할 수도 없는 것이며, 상대방을 우선하여 내 마음을 양보하는 정신을 배워야한다. 더 나아가 진정한 민주주의도 배워야한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같은 마을의 한 구성원이며, 동등한 객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노래의 제목에서 ‘갑돌이와 갑순이’가 뒤바뀌어 ‘갑순이와 갑돌’이가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갑돌이가 먼저 장가를 가든, 갑순이가 먼저 시집을 가든 아무 문제가 없는 대등한 조건인 것이다. 거기에는 갑돌이와 을순이가 필요 없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계약을 맺으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구두로 계약을 하고, 때로는 서류로 계약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계약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갑과 을이다. 엄연한 계약 당사자가 있으나, 갑과 을이라는 단어를 별도로 사용하면서 진행해간다. 의미로는 단어의 줄임이요, 상대방의 우월적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비인칭 일반대명사로 대신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갑과 을이 가지는 의미는 우월적 신분을 대신하는 것은 물론이면서, 강압에 의한 종속의 관계까지도 연상시킨다.
보통의 경우 내가 돈을 주고 물건을 살 때는 갑의 위치에 서지만, 전세 계약으로 세입자가 되면 내 돈을 주면서도 을의 입장으로 변한다. 그러다가 내가 자동차나 대형 냉장고를 산다고 하면 같은 구입자라도 다시 을이 되고 만다. 갑은 항상 절대적이고 강압적이며, 갑은 항상 권위적이고 물질적 우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협력업체가 서로 협력적이어야 한다면, 갑과 을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통상적 을을 갑이라 칭하고, 갑은 을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약자를 갑이라 칭하고, 계약서는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 말로는 협력업체지만, 실제로는 하청업체요 종속업체인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변해야 한다. 그래야 둘은 정당한 협력업체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진정으로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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