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로 전북의 어떤 제2금융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 적은 돈을 맡겨 놓은 사람이든 많은 돈을 투자한 사람이든 신정연휴동안은 그야말로 날밤을 새우며 걱정에 걱정이 앞섰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 원리금이 5천만원을 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말은 벌써 예전부터 있었던 이른바 금융보상제도이다.
첫 근무일 영업정지에 따른 후속대처를 안내하는 설명회장은 발디딜틈이 없이 북적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인 양, 아는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그냥 못 본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체 이들은 서로에게 무슨 잘못을 하였단 말인가. 웅성대고 혼잡하던 설명회장은 드디어 금융감독원 직원의 설명이 시작되자 조용해졌다. 뭔가 내가 걱정하는 짐을 덜어 줄 수 있을지 숨을 죽이고 귀를 모았다.
이때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대화가 이어졌다. ‘응~ 설명회장, 내가 다 알아봤는데 그때는 아무 이상이 없었거든’, ‘내가 조사 해보고 비스도 알아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니까’ 다들 바늘소리라도 들으려는 자세를 하면서도 누군가가 나서서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참다못한 내가 옆에 있다는 이유로 조용히 해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잠시 주춤하더니 창가로 가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가 그 소리고,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러나 좁은 실내는 창가나 복판이나 다를 게 없었다. 견디다 못한 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좀 조용히 하면 안되겠느냐고 푸념을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도 한번 돌아보는데 한껏 폼을 내고 온, 나이도 지긋한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어떤 사내가 내 앞으로 다가오는 듯하였다. 아까 창가로 옮겨갈 때에도 누군가가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러다가 큰 싸움이라도 나겠구나 하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안 들린다잖아’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부인을 지키는 호위무사로서, 임무를 다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충실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동시에 전화통화도 끝이 났으니 모든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 중에 고등학교 교사가 있다. 그는 원리금이 5천만 원을 넘는 사람들도 정부가 나서서 모두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였다. 그것은 안 먹고 안 입고 모은 돈이니 모두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명제가 도입되고 파산시 원리금 보장한도액이 5천만 원이라고 정한지도 벌써 여러 해 전이다. 이쯤되면 예금자보호법을 정해놓고 그 법을 어기자는 것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차라리 이참에 보장 한도액을 늘리고 폭을 넓히자는 것이 원하는 답이 될 것이다.
우리같은 민초들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부자이면서 훌륭한 사람들도 하지 말라는 것을 한 후의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지금 세종시 특별법을 놓고 다시 수정안을 입법예고한단다. 원래의 세종시는 행정복합도시로 행복도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도시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기업도시로 바뀌고 그 도시를 위한 특별법을 수정한다는 것이다. 소위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바꾸기 전에 먼저 계획을 세워놓고 거기에 맞는 법을 만든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만든 법을 자기들이 지키지 않더니 자신이 생각한데로 법을 고쳐야 겠다는 것이다. 교육자나 입법자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지닌 위상이 우리 현실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미 자신의 직무를 포기한 때이다. 공정하고 냉정해야 할 지도자들이 휩쓸려 다니는 것은 전체를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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