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질서와 보이지 않는 경쟁=
지방직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던 000가 의원퇴직을 하였다. 10 여 년을 근무하다가 퇴직하였는데, 당시에는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선 것이었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물론 퇴직을 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것을 다 열거 할 수도, 또 열거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사회에 나와서는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였다. 공무원처럼 편하고 공무원처럼 부담없는 직장이 또 있을까 하는 의심도 하였다. 아직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후회하고 있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막상 틀을 벗어나서 사회에 들어서니 의지할 것이라고는 튼튼한 몸밖에 없었기에, 이일저일 닥치는 대로 뛰어도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냉담이었다. 어쩌면 마음씨 좋은 많은 사람들도 관심은 있되 일에까지의 관여는 해줄 수 없는 그런 형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얻은 직장,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직업 중의 하나라는 택배업이었다. 그래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만 일한다면 뭔가 희망은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국은 시중에 떠도는 말은 하나도 거짓이 없다는 진리를 깨달으면서 그 일도 그만두었다. 택배업은 육체적으로 너무나 고된데다가, 더우기 개인적으로 정신적인 시간조차 전혀 낼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가 운이 좋았는지 성실함을 인정받아 어떻게 대기업의 임시직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기업에서는 벌써 연령초과라서 정규직 입사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입사를 원한 것도 아니었으니 이것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누구인지 따지지도 않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대기업의 비정규직은 급여가 적었지만, 시간도 많은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무 정규직이야 자기들이 시간을 내가면서 업무를 하고, 생산 정규직들은 주어진 자기 일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일이 막히면 담배를 피면서 생각을 하고, 손님이 찾아오면 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하였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시키는 심부름 외에는 근무 중에 자리를 이탈하기가 어려웠다. 비정규직이 그렇게 못하는 이유 첫째는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런 일은 처음부터 맡겨지지 않은 원인도 있으니 그에 대하여는 따질 생각도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업무가 똑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큰 기쁨에 젖기도 하였으나, 급여나 후생복지적인 권리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실망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막상 그 속에 들어가 보니 보이지 않는 장벽이 쌓여있었고, 그들은 그런 장벽으로 인해 갈려져 있었다. 비록 회식 때는 참석을 시켜주었지만, 평소에 이루어지는 회의에는 참석도 시켜주지 않는 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기를 바라기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하루의 업무는 아침 8시에 시작하여 저녁 7시에 마친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10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그 중에 2시간은 초과근무로 인정하여 추가된 급여를 받으니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활은 꾸려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작 30분전에 출근하는 것이 정상이고, 일을 마치면 30분 정도가 지난 후에 퇴근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기업에 들어와 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누가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착착 돌아가는 업무가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임시직 업무야 단순직이니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었으며 어렵거나 복잡할 것도 없었다.
이마에 비정규직이라고 써 붙이지 않았으니 밖에서 보는 사람들이 물어만 보지 않는다면 기죽을 일도 없었고, 명찰에 비정규직이라고 써 붙이지 않았으니 회사 내에서도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시간이 흘러 회사의 업무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고 나니, 눈에 걸리는 모든 것들이 공무원사회와 비교가 되었다. 거기는 거기고 여기는 여기일 뿐이라고 애써 외면하였지만, 그래도 사실이 사실인 것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공무원사회를 개판 5분전이며, 질서도 없고 규칙도 없는 그야말로 개인위주의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의 공무원 사회는 그렇지 않다. 업무가 연속적이지 않고 하루하루가 달라서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그것도 나름대로는 질서를 갖춘 업무에 속한다. 민원을 받거나 지시에 의하여 업무를 할당받으면 그때부터 일이 시작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니 이것도 공무원사회에서는 정해진 규칙이며, 오랜 관습에 의한 규칙이다. 그러다가 모르는 문제가 발생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상사에게 물어서 답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답답하고 폐쇄적이며 발전이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말한다.
일반인들은 업무의 탁월한 실적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무리하게 나서는 공무원을 만나기 힘들다. 그래도 공무원들은 틀리지 않고 전례에 따라가려는 자세로 확실한 답변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일반사람들은 이것을 공무원의 복지부동이라고 한다.
이런 일들은 민원인이나 문제가 생긴 것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관점의 차이가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은 생활의 편리를 위하여 혹은 보다 나은 서비스를 요구하지만, 공무원들은 전에 있었던 판례나 규정상의 문제를 들어 민원인이 손해 보는 것을 막기보다는 나의 업무적 과오를 만들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확대해서보면 어떤 사람은 근무시간에 순찰을 간다고 하더니 나무 그늘에서 잠을 자다오기도 하고,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하다와도 그냥 눈감아주는 곳이 공무원사회다. 휴일에 출근을 하였다고 카드를 찍고 돌아서서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하더니, 저녁 무렵에 퇴근카드를 찍으러 가더라도 그냥 모른 척하는 것이 공무원사회다.
말하자면 남의 잘한 것은 들추지 않아도, 최소한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공무원의 신조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돌아올 보복의 단초를 없애는 것이며, 언제 다시 어떤 부서에서 만날지 모르는 그날을 위하여 보험을 들어놓는 것에 속한다. 다시 말하면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할지 모른다는 심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깔려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런 의심들은 공무원 스스로가 조장하여왔다. 정년을 맞은 공무원이나 전출을 가는 공무원이 하던 말 중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바로 대과없이 떠난다는 말이었다. 다시 말하면 커다란 잘 못 없이 떠난 다는 것이다. 업무를 얼마나 잘 했느냐 잘못했느냐는 차치하고, 커다란 과오가 없었다는 것을 자랑하기로 하면 그야말로 일을 안 하면 되는 것이다. 예전의 공무원들은 그래왔다. 이른바 복지부동이다.
그런데 이런 풍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습으로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친일세력을 발본하지 못하여 다시 친일세력의 자손들에게 지시를 받고 일하는 우리 현실과 무엇이 다르랴. 그것도 유독 공무원사회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기업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가 나서서 처리하는가 하면, 어떤 일은 자기가 하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하였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업무의 성과를 내기 위하여 없는 일도 만들어서 처리하고, 다른 사람이 한 일의 성과를 빼앗아서 자기의 공으로 돌리는 경우조차 생기는 게 기업이다. 그러나 드물지만 남의 허물을 자기가 뒤집어쓰는 경우도 발생한다.
각 기업들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모든 일에 매뉴얼을 작성하여 놓았다. 그대로만 행하면 업무가 잘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그러기에 누가 결근을 해도 회사는 돌아가고, 어떤 일로 사표를 낸다 하여도 회사는 잘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조직사회로 대변된다. 물론 조직사회가 갖는 의미는 틀에 짜여져 있는 기준대로만 일한다는 것이니 기존의 공무원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기업은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밖에서 보는 회사는 어떤 조직의 장이 바뀌든 말든 아무런 변화가 없이 잘 돌아간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바뀌어도 문제가 없고, 도지사가 바뀌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심지어 사장이 바뀌거나 회장이 바뀌어도 겉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없어 보인다. 그것은 앞서 얘기한 그 완벽하다는 매뉴얼 때문이다. 사람이 없어도 시스템이 일을 하니 그런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사회의 문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 진리다. 남의 실수를 들춰내어 밝힘으로써 상대적으로 나의 공로가 커 보이는 곳이 기업이고, 시스템이 완벽하지만 그 시스템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곳도 바로 기업이다. 어떤 시스템이든 일을 잘 처리하려고 잘 할 수 있는 방법만을 정해놓고 있는 것이니, 남이 실수하여 헝클어 놓은 일은 항상 비시스템적으로 처리해야 풀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에는 완벽한 규칙이 있으나 그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곳이 바로 기업이며, 기업에는 확실한 위계질서가 있는 곳이면서 그 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곳도 바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에서는 남의 잘못에 대하여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들춰내어 고치고 대가를 요구하며,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조건으로 나의 잘못을 보상받아야 눈감아 줄 정도다. 말하자면 남의 잘못이 곧 나의 잘한 것이 되고, 남이 잘못돼야 내가 잘되는 곳이 기업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경쟁이다. 그렇다고 어떤 일을 놓고 부정한 방법으로 이면계약을 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남을 용서하지 않거나, 기회만 되면 나를 위하여 마다하지 않는 경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결과는 나와 기업을 위한 것으로 귀결된다. 어찌 보면 동료간의 상생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기업은 이렇게 경쟁을 하면서 발전하여 왔다. 그러기에 조금은 냉정해졌고 조금은 비정하다할 만큼 모질어져 왔다.
기업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그 안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소속원들을 책임져야 하기에 어떤 방법으로든 이익을 내야 한다. 이른바 기업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상법에서도 기업은 많은 사람이 모인 특정된 사람으로 인정하여 등록번호를 부여하였으며, 사람처럼 벌어먹고 살라는 뜻으로 법인이라는 정식명칭도 붙여주었다.
이러한 기업들의 경쟁은 글로벌 시대에 와서 국경이 없어졌고, 경쟁만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기업간 경쟁은 어쩔 수없는 기업문화가 되고 말았다. 기업이 추구하는 바 2등은 필요 없고, 결국은 1등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2등은 합종연횡으로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며, 때로는 적대적 합병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이유로 든다.
세상은 지금 실용주의로 옮겨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합리보다는 실익을 우선한다. 먼 미래의 행복보다는 우선 당장의 작은 이익을 들고 나선다.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확실한 현재의 욕구를 충족시키겠다는 계산이다. 이것은 원숭이의 조삼모사와 같은 것은 아닐까. 결국 이것들은 동양철학의 핵심인 협의와 중용을 뒤로한 채 성과와 효율을 우선으로 한 서구식 경영방식의 산물이다. 모두가 잘못 선택된 실용의 결과다.
이런 것을 보면 공무원사회가 답답하고 어리석다고 폄하하는 일반직장인들도 다른 사람의 사정을 몰라주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남의 허물을 모른다기 보다는 일부러 잘못을 찾으러 다니는 것에서는 더하다.
현재의 기업들이 진짜로 더 좋은 효율을 낼 수도 있으련만,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애써 모른척하는 구성원들의 태도가 기업사회의 성과지상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때가 되면 어떻게 하여 승진을 할 것인지 고심을 하고,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을지로 머리를 싸맨다. 그것은 정작 어떻게 하면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어떻게 하면 생활에 편리한 제품을 만들 것인가에서는 한 발짝 비켜 선 태도다.
공무원사회도 기업사회도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과 경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공무원은 일반시민들을 위하여 일한다는 점이고, 기업은 그 안에 소속된 특정인들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기업은 공무원에 비하여 생리적으로 더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일반인들은 기업에 대해서 좀더 관대한 태도를 보이며, 공무원에대하여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시민을 위하여 일한다는 공무원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공무원이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망각하고, 공무원이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하고, 자기가 수세에 몰리면 이 법이 원래 그렇다는 핑계로 둘러대고, 무슨 잘못을 지적하면 반드시 보복하는 못된 행태를 보이는 것 등이 그것이다.
공무원이 시민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시민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을 인식한다면 정말 사랑받는 공무원으로 거듭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무원은 대통령으로부터 저 말단 기능직 사무보조원에 이르기까지 다 해당된다. 그렇다면 공무원이 지녀야 할 본분은 모두 같을 것이고, 지켜야 할 도리도 모두 같을 것이다. 공무원이 국민의 종으로 거듭나야 사랑받는 다는 것, 공무원의 경쟁은 민원인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 이것이 곧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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