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방송에서 간 보는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꿈꾸는 세상살이 2010. 8. 19. 11:12

방송에서 간보기

 

텔레비전에는 가끔씩 요리프로가 나오기도 한다. 어떤 때는 구수한 시골아낙의 손맛을 자랑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문가의 특별요리를 선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맛자랑 영양자랑을 할 때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이때 맛을 전달해주는 사람은 리포터다. 리포터는 언제 어디든지 나타나서 음식을 맛보고 그 맛을 설명해주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군침을 돌게 만든다. 말하자면 맛의 전령사이다. 그런데 이런 맛의 전령사도 음식을 먹기 전에 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이다. 실제 음식의 간을 보는 것을 생략한다 해도 시청자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음식에서 음식의 간을 보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일의 한 과정에 속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간이 안 맞으면 소금을 넣든지 국간장을 넣든지 혹은 양념간장을 넣든지 하는 것들이 모두 조리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 하더라도, 리포터가 직접 커다란 국자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보는 것은 좀 어색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먹다가 남은 국물은 다시 국솥에 붓고 예의 그 국자로 휘휘 저으면서 간이 맞지 않다느니 아니면 알맞은 간이 되었다느니 하는 것은 남 보기에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나 한 그릇에 퍼놓고 여러 사람이 수저로 떠먹는 우리의 식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외국인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질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말로만 선진국이고 말로만 위생국가라고 하면서 실제로 하는 것은 아직도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들을까 염려된다.

꼭 음식의 간을 보아야 우리의 음식이 된다면 작은 그릇에 떠서 다시 수저로 간을 본 후 남은 국물은 버리는 것이 해결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국물이 모자라서 물을 더 부어야 할 정도도 아닐 것이지만, 환경이 오염될까 걱정된다면 나중에 자신이 떠먹을 그릇에 부었다가 같이 먹으면 될 것이다. 음식의 간이 서로 다르다고 핑계 댈 수는 있지만, 양이 아주 적으니 그 정도의 오차는 느껴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은 음식의 간을 보는 것 외에도 여러 분야에 걸쳐 간을 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65주년 기념 광복절 축사에서 통일세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하더니, 여론이 들끓자 지금 당장 걷자는 얘기가 아니라고 한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 정도로 국민의 정서를 모르고 툭툭 던져본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텔레비전에서 조리하는 음식의 간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긴 이뿐만이 아니니 국민을 간보는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무위원을 임명하면서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 상대무고, 부정축재, 도덕성 결핍 등을 알면서도 국회 인사청문회에 내세우는 것은 국민간보기가 틀림없다. 나는 이렇게 너를 추천하였지만 네가 부족하여 국민들이 싫어하니 나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한다는 핑계가 필요한 것이거나, 국민들이 어떻게 나오나 두고 보자는 심산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분명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간보기가 아니면 무엇이랴.

 

이렇게 국민간보가기 끝난 후 여론이 비등하면 재갈을 물리면 되고, 여론이 잠잠하면 하나의 전례가 되어 다음에도 그냥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다. 이러니 간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전혀 밑질 것이 없는 장사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손해가 나는 사람은 피가 거꾸로 솟고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선량한 국민들뿐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환경이야 오염되든 말든, 국민들의 속이 타들어가든 말든, 비위생국가라고 비웃든 말든, 국민경제가 파탄이 나든 말든, 오로지 지금의 내가 편하고 잘 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식들은 강물을 팔아먹은 돈이든, 나라를 팔아먹은 돈이든, 국민들을 속여서 챙긴 이익금이든 상관할 것 없이 풍요롭게 잘 살면 그만인 것이다.

훗날에는 국가간 개념이 없어질 터이니 그냥 다른 나라에 가서 아무데서나 즐기며 살면 되는데 무슨 정의가 어떻고 진리가 어떻고 따질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생각할 것은 글로벌시대에 경제적 부만 축적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래서 오늘도 그들은 국민을 간보기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를 해가며...

2010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