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움에 장려금이 필요하다.
‘국가 시책에 부응하여 젊은이들에게 출산을 장려하고 부모가 아이를 보육하는 기쁨과 희망을 주며 익산시 복음화사업에 앞장선다’는 목적을 가지고 탄생한 장려금제도가 있다. 물론 특정 단체에서 특정인에게만 주는 장려금이므로 그다지 자랑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부터 느끼던 복지의 한 단면을 생각하면 선거 때 표를 의식해서인지 노인 위주의 정책과 선심성 정책의 테두리에 갇혀있는 것을 종종 느낀다. 그렇다고 현재의 복지정책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것보다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책이 무엇일까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향후 20년만 지나면 최저 출산율로 인하여 인구 감소국면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낳기운동을 벌이고 다산 가정에 대하여 혜택을 주면서 장려하고 있다. 또 당장 인구가 감소하고 있거나 고령화된 지자체에서는 주민등록을 전입하거나 출산을 하는 가정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장려금이라는 게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를 낳으면 20만원을 준다거나 출산용품을 지원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어차피 낳아야 할 아이는 이런 정도의 장려금 때문에 낳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존립을 위하여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낳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원을 하는 곳에서는 마치 자신의 공로인양 내세우지 말라는 말이다. 문제는 첫아이 혹은 둘째아이가 아니라 그 다음에 낳아야 할 아이가 대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현재의 노인 정책 중 진료를 받는 경우에 요율을 낮게 책정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는 물리치료 혹은 치료약을 구매할 경우에도 같이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비 지원대상에게는 어느 병원이나 약국을 가더라도 무제한 무료혜택을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국민을 위하여 끝까지 책임진다는 정책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부는 의약품 무료쇼핑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처방과 약을 지원받지만, 정작 본인은 그 약을 복용하지도 않고 버리는 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요람은 없는데 무덤까지만 있는 복지정책으로, 이런 정책을 펴는 지도
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뒤에 벌어질 사태는 생각하지 않고 당장 어떤 사안을 해결하려는 근시안적인 행정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인들에게만 끝까지 책임을 지면서, 아이들에게는 처음부분도 책임을 져주지 않는 국가가 정말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국가일까 생각해본다. 혹자는 지금의 노인들은 우리나라를 이만큼 이루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으니 이 정도의 지원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고 또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데에 공감한다. 하지만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루 보살피는 복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금의 노인들이 혹은 지금의 지도자들이 내가 이 나라를 일으켰으니 내가 다 말아먹고 죽겠다는 심뽀가 아니라면, 비록 내가 이뤘지만 어느 정도는 후손에게 물려주고 가야한다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나 자신도 나의 선대로부터 이 나라를 물려받았으니 순전히 내 힘으로 이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익산을 대표하는 교회 중에 남중교회가 있다. 이 교회가 익산에서 가장 크고 돈이 가장 많은 것은 아닌데도 한 아이에게 300만 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이 돈은 한꺼번에 주는 것이 아니고 매달 일정금액으로 나누어 지원한다. 일시불로 지원하면 이 돈을 받고 다른 교회로 갈까봐 교인을 묶어두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있겠지만, 하지만, 현재 남중교회는 그렇게 하기 전부터 신도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어 성장하는 교회로 소문났으니 그런 해석은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규칙은 지속적인 관심과 꾸준한 사랑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지자체에서 출산장려금으로 지급하는 금액이 300만 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하나의 교회에서 이렇게 지원한다는 것은 정말 파격적인 일에 속한다. 한편 택시타는 날을 정하여 모든 교인들을 강제로 택시에 태운 다든지,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하여 실시해오던 바자회를 중단한 것들은 작은 행동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다른 교회처럼 불우이웃돕기는 물론이며, 성적에 관계없이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 등은 계속 추진하여 사회의 좋은 귀감이 된다.
국가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 생명을 키우는 일임은 물론이며,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육성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비용의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사업이라는 책임감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런 지원을 받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지원이라면 더욱 좋은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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