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잡다한 무엇들

행복을 주는 석류

꿈꾸는 세상살이 2015. 10. 29. 05:37

 석류가 달렸다. 작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내가 먼저일까 네가 먼저일까 서로 다투며 고개를 내민다.

혹시나 지나가는 길손이 저를 보아줄까 고대하며 덩치를 키운다.

정말 탐스런 석류다.

예전의 석류는 아주 귀한 열매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하나 요즘에는 그래도 조금은 흔한 열매가 되었다.

왜 그럴까.

예전에는 밤나무 한 그루도 그랬고 감나무 한 그루도 그랬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주택집 한 가정에 감나무 한두 그루 없는 집이 없다.

왜 그럴까.

전에는 감나무가 있는 집이 밤나무가 있는 집이 그렇게 부러웠었는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그 대답은 어렵지 않다.

단 한 마디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예전에 비해 먹고살기가 나아져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먹고살기가 나아진만큼 걱정거리는 늘었다.

이 석류를 누가 따 갈까봐 걱정하고 감을 누가 따 갈까봐 걱정하고 밤알을 누가 주워갈까봐 걱정하고....

아니 사실은 이런 것들은 걱정 축에도들지 못한다.

사실은 아주 강력한 걱정거리가 시시때대로 기다리고 있다가 틈만나면 나 여기 있었오하면서 달려온다.

아주 중요한 문제로 걱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쓸 데 없는 아주 하찮은 것들로 인한 걱정거리다.

말하자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걱정거리라는 말이다.

잘 여문 석류를 보면 그저 탐스럽다 아주 풍성하다 그러면 될 것이다.

그런데 석류를 보니 신맛이 입에 감돌아 눈이 감겨진다는 것은 아주 쓸 데 없는 걱정거리다.

석류는 그저 석류일 뿐이다.

특히나 담 넘어 안 쪽에 있는 석류는 그저 그림의 석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석류를 보면서 마치 알맹이를 씹은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 입에 침을 고이는 것은 필요 이상의 노력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일상 중의 대부분인데

사실 이런 그림의 떡과 내 손안의 떡을 잘 구분할 줄 아는 것이 현명한 삶이 아니겠는가.

담 너머 그림의 떡인 탐스런 열매를 보면서 행복해하면

것은 바로 먹지 않아도 풍족한 삶의 한 부분인 행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