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7 일
아침 4시에 잠에서 깨었다.
요즘들어 최근에 일어나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있다가 일어나기로 하였다. 아침 5시. 이제는 일어날 시각이다.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리는 어둡지만 불빛에 비친 모습들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간밤에 눈이 올 것 같았었는데 전체적으로 뿌연하기만 할 뿐 눈은 보이지 않는다. 지붕에는 하얀 기운이 있으나 도로는 검정색으로 보아 눈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책을 보다가 아침 6시 40분에 교회로 향한다.
현관문을 나서니 웬걸! 온통 하얀 눈 천지다. 거실에서 보이던 그 뿌연 모습은 함박눈이 날리던 모습이었다. 눈은 아침부터 오기 시작하니 도로에는 눈이 녹고 있어 검정색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차에 시동을 걸고 덮힌 눈을 치우는데, 차에 얼어붙은 눈들을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보다 더 급한 것은 다른 차량이 아직 빠져 나가지 않아 여러 대의 차들을 밀고 당겨야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어두운 새벽 미끄러운 눈밭에서 차를 밀고 나갈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차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내 걸어가기로 하였다. 갑자기 결정한 일이라서 우산도 없이 함박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것은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옷이야 따뜻하게 입었다고 하더라도, 머리야 머리카락이 있다고 하더라도, 얼굴은 어떡할 것인가. 눈에 눈이 불어 닥치니 안경에 붙은 눈이 녹아내린다. 그러나 이 눈녹은 물이 미처 흘러내리기도 전에 또 다시 부딪친 눈들이 그 위에 쌓인다.
힘들게 가는 교회였다. 부어대는 눈들은 금새 발목이 빠져 걸어가는데 자유롭지 못하고 힘이 든다. 가로등 밑에서 보이는 눈발이 세상것들을 막고 서있어, 마치 유격장의 화생방실 독가스만큼이나 시야가 흐리다. 첫눈이 이렇게 많이 오면 좋은 일이 있으려나?
그런데 교회에 가니 그것들이 모두 풀렸다. 교회 안은 온통 따뜻한 기운이 넘쳤다. 예배당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현관부터 그 기운이 감지된다. 물론 이른 아침부터 난방기를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다가가니 마음이 푸근해지고, 목적지에 다 왔다는 안도감과 정신적인 평화가 찾아와서 그럴 수도 있겠다. 작지 않은 교회라서 난방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 펑펑때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12월 들어서도 지난 주부터 난방기를 가동한 정도였으니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목사님 말씀 왈, 이렇게 춥고 눈 오는 날 교회에 오느라고 수고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교인으로서 교회에 오는 것은 일기에 관계없이 당연한 것이니 말할 것이야 없겠지만, 요지는 고맙다는 것이었다. 지금 오는 눈이야 이제 그만 그칠지 더 많이 올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아침 일찍 교회에 나오는 것에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셨다.
헌금을 많이 내서 고맙다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빠지지 않고 잘 다녀서 고맙다는 것도 아니고, 믿음이 많아서 고맙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교회에 일찍 나와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뭐 출석 부르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나오는 시간에 서로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눈치보는 것보다, 선착순에서 밀리면 딱딱한 간이 의자에 앉아야 하는 것보다, 조금만 늦게 오면 다른 건물로 가서 화면으로 보아야하는 것보다, 더 늦게오면 서서 예배를 보아야 하는 것보다, 이렇게 아침 일찍 오는 사람들이 고맙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인들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무엇이 그리 고맙다는 것일까.
대답은 단 한 가지. 배려라는 것이었다. 내가 일찍 나서는 것은 남이 서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 경쟁에서 나는 빠지고 말이다. 만약 나마저 그 경쟁 대열에 서 있다면, 결과적으로 이기는 몇 사람이 선착순으로 이기겠지만, 나는 그들을 위하여 경쟁 자체를 포기해 준 것이니 고맙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행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도리어 남을 위한 배려로 변해버린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고도 칭찬을 받으니 여간 부끄럽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한켠 뿌듯하다. 나도 남들을 위하여 베풀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러기 위하여는 내가 하는 행동에 항상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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