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치르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치렀다. 처음부터 공개 모집이 아니었고, 여러 사람이 경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입사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서류검토와 구술시험 등으로 심사하였던 때와는 정 반대 입장이 되어있었다. 이번 면접은 나 혼자를 대상으로 당락 여부만 가리는 면접이니 나름대로 부담감도 많았다.
내 손으로 이력서를 들고 면접관을 찾아가는 심정이란 실로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이 가지는 합격의 부담보다 훨씬 많은 짐으로 다가왔다. 처음에 무슨 말을 하여야 좋을지, 이런 질문에는 어떤 답변을 하여야 좋을지, 이미 많은 예상문제는 주어졌고 모범답변도 주어졌으나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내 손을 거쳐 간 수많은 입사 지원자들이, 내가 내린 결론에 따라 얼마나 많은 실망들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드디어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면접 장소는 회사가 아니라 모 관광호텔의 커피숍이었다. 이날따라 커피숍이 내부수리중이라 맨 윗 층에 있는 스카리라운지로 옮겨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일이 잘 풀린 징조인지, 아니면 어렵게 꼬일 징조인지도 모른 채 기다렸다. 일반적인 면접은 면접관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력서를 미리 보내주고 사전 심사를 한 후 최종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중이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출입문 쪽에서 중년의 남자가 걸어온다. 보기에는 나보다 다섯 살 정도는 위로 보이고 몸집 또한 중후하여 듬직해 보인다. 그 사람은 회사의 사장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고 정작 업무얘기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물어 볼 필요도 없다는 결론을 내고 있었나보다.
듣다보니 핸디캡이 나왔다. 글쎄 사장의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아래란다. 그 분이 늙어보여서인지 내가 아직 어린 애라서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래도 한마디 위로를 하시는데, 지금 계신 분 중에 사장보다 나이가 세살이나 많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분은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부터 일해 온 사람이 아니던가. 나와는 출발부터가 다른 것이다.
또 한 가지, 이력서의 내용 중 영업부문을 확인한다. 사실 나는 이력서에 적힌 그대로 영업계통에서는 근무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 공장 경영은 물론이며 영업까지도 맡아야 된다고 한다. 요즘 영업이야 예전과 달라서 기술영업이 주를 이룰 것이고, 그까짓 것 한 번 잘 해보겠노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대답은 하지 못했다. 신입사원도 아닌 공장의 책임자를 뽑아놓고 경영자의 목적과 부합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업의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최고 경영자는 자신의 판단 하나로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는데 그 뜻을 망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내가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항상 잘못 판단할 것이라고 우려해서가 아니다.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아서, 최고 경영자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면접을 마치면서,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영업까지도 잘 해보겠다고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더 적합한 사람을 찾아서 사업을 잘 이루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이루어진 입사면접은 실패로 돌아갔다. 자동차로 네 시간이나 달려가서 실시한 면접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뒤로 돌아서서 내가 쓴 이력서를 들여다보는 순간, 나이는 오십이 넘었지만 아직도 종이의 여백이 많다는데 나 자신도 실망스러웠다.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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