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 속 돌탑 하나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이라는 나무도 한낱 화목에 지나지 않았다. 불이 번지고 주위는 온통 시뻘겋게 변했다. 거센 파도가 밀려오듯 화마가 밀려왔다. 한바탕 광풍이 불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성한 것이 없었다. 천년 고찰을 지탱해 온 기둥도 거북과 용이 그려진 상량마저도 한줌 재가 되고 말았다.
모진 풍상을 막아주던 막새며 기와도 온데간데 없었다. 비록 근본이 흙에서 나고 자란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마디 말도 못한 채 허무하게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면서 절집의 내력을 전수받았던 의기양양하던 모습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신 새벽 피로에 지쳐 떨어진 동자승의 눈을 비벼주던 종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천을 넘어 굽이굽이 울리던 종소리를, 혼란하던 마음을 정돈시켜주던 종소리를, 번잡스런 잡귀들을 일거에 다스리던 종소리를 만드는 종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깃을 털어내어 조용한 산사를 덮고 하늘까지 넘보던 동종마저 울며불며 몸부림을 치고 말았다. 일그러지고 흐물러 터진 모습은 마치 화로속의 밀납과도 같았다.
모두가 온실 속의 화초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끝도 없이 날뛰던 기세가 한줄기 비 앞에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천년 비바람을 맞고 설상가상도 마다하지 않는 탑만이 무사하였다. 마당 한 가운데 서서 오고가는 모든 이들의 아픔을 받아주던 탑만이 무사하였다. 수많은 세월 동안 담금질과 얼음찜질로 버텨온 그 탑이 온전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윽한 향내를 맡으며 뭇사람들이 찬불하던 대웅전을 먼 발치서 바라만 보던 탑 하나가 무사하였다. 두 손 모아 빌고 수없이 고개 숙여 절하는 것을 그저 바라봄에 만족해야 했던 석탑만이 무사하였다.
하마 인내와 고뇌로 점철된 석탑의 속마음은 사리보다도 더 단단하게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열반하는 보살이 한 움큼 던져주던 사리처럼, 산사의 고뇌가 벗겨지던 날 새롭게 태어난 돌탑이었을 것이다. 지나온 세월 천년을 증거 하듯 서 있던 돌탑이, 이제는 죽어서 천년을 살겠다고 버티며 서 있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꼭 그만큼만 더 살겠다고 서 있었다.
귀하게 대접받던 것들은 모두가 사라졌으나 천하게 푸대접 받던 것만이 꿋꿋하였다. 그것은 내 가슴속에 남아있던 돌덩이 하나가 탑이 되어 살아난 느낌이었다. 봉사 천년에 벙어리 천년이요, 귀머거리 천년이던 돌탑 하나가 이제는 기 좀 펴고 살게 되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며 탑돌이를 시작하였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측량할 수도 없는 무게를 버텨온 세월을 밟고 또 밟았다. 산이 그대로 있고, 돌탑이 그대로 있으니 달리 십장생이었으랴.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짓누르는 것이 있으니 무거운 돌탑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언제까지인가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어디를 가든 어디서 오든 항상 내 마음을 따라다녔다. 무엇인가 답답하기만 하고 도무지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항상 같이 다녔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무거운 돌탑에 메이지 않았더라면 세상도처에서 떠다니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방황하고 있을 것 같다. 비가 오거나 물난리를 맞아도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떠다닐 것이 뻔하다.
모든 것이 사그라진 뒤에도 홀로 외로이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은 역시 돌탑뿐이었다. 오래 전부터 어버이의 한을 이어 받은 돌탑이 지금도 내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전혀 미동도 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제대로 숨 한 번 크게 쉬어보지 못해 쪼그라진 쫌팽이가 되었어도 연연이 맥을 이어온 것은 말없는 귀머거리에 봉사인 그 탑뿐이었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게으른 토요일 어느 날 (0) | 2008.02.07 |
---|---|
다 아는데 엄마만 모르는 사실 (0) | 2008.01.19 |
내가 만약 상병 제대라면 (0) | 2008.01.15 |
시청 정원의 크리스마스트리 (0) | 2008.01.13 |
솥 닦는 여인 (0) | 2008.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