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차마고도는 왜 생겼나

꿈꾸는 세상살이 2008. 2. 9. 20:10
 

차마고도는 왜 생겼나

 

설 연휴기간 중에 시간을 내어 산책을 하였다. 남들 같았으면 오고 가느라 정신없이 바쁠 시간이고, 장만하고 준비하느라 피곤한 몸을 어떻다고 표현조차 못할 그럴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을 잊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설을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여행을 가거나 멀리 있는 산을 찾을 수는 없었다. 마음속에는 우리의 명절이 자리하고 있어 도무지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심란함에 그냥 있을 수도 없어 시내에 있는 공원을 찾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의지에 의해 선택한 것이다.

 

일기예보에는 날씨가 좋다고 하더니 눈발이 비친다. 생각해보면 그깟 일기예보가 조금 틀린다고 하여 세상이 달라질 것도 아니니 신경 쓸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는 눈길에 미끄러진 차가 연속하여 23대나 부딪쳤다고 한다. 눈이 오면 조심조심 가야 할일이지, 눈이 와서 미끄러졌다고 하면 상처가 바로 나을 것도 아니니 모두가 다 내 탓이다. 내가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산을 오르는데 숨이 차다. 높지 않으니 힘이 드는 것은 아니었고, 오래 걸은 것도 아니라 체력이 달릴 만큼도 아니었건만 발걸음이 둔하다. 힘없이 내딛는 발걸음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맑은 공기나 마시고 체력이나 다지자고 판단한 내 머리에 따라 움직이는 몸일 뿐이다. 쉬는 날이면 반드시 산에 가야 한다고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좋으나 싫으나 누가 시켜서가 아닌 바로 내가 선택한 산책길이다.

비탈을 오르다가 눈 쌓인 바위에서 미끄러지니 히말라야의 소금광산이 생각났다. 어쩌다 그처럼 높고 험악한 고산지대에 태어나서 소금을 캐고 있단 말인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 내가 해보겠노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어찌하여 소금 짐을 지고 먹기조차 못한단 말인가. 따져 묻는 아이에게 얼어붙은 소금마저 없었다면 무얼 먹었을지 그나마 감사하라면 합당한 것일까. 현인들은 말할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태어난 아이한테,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런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 아이한테, 그것도 모두가 자신의 업보라고.

 

고개를 들어 정상을 보니 하늘과 맞닿은 차마고도가 생각난다. 목숨을 걸고 비탈을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차마고도는 누가 만들었을까. 그 길은 바로 죽음과 삶의 공간을 저울질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이 차마고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와 같이 가고 있으나 동행은 할 수 없는 길, 천길 낭떠러지는 알아도 내 맘 속은 모르는 길, 원인도 모른 체 현재만 존재하는 길임이 유사하다. 아마도 이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 있어 모든 것은 다 내 업보일 게다.

 

사람은 죽어서 전생에 지은 죄대로 태어난다고 하였다. 저승에 가서 죄 값을 치르지 않으려면 이승에서 잘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 나에게 지금 착한 일을 하여야 한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어둡고 칙칙한 세상이라 하여도 나는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내가 죽은 후 내세를 생각한다면 이 시간도 허투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 아이는 언제적 사람인가. 그것이 바로 전생의 업보라더니 현세에도 힘들게 사는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도대체 누가 차마고도를 만들어 가지고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명절날 차례도 못 지내고 성묘도 못가는 이 심정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나중에 짊어질 업보가 된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생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현상들이 모두가 내 탓이라면 도대체 내 업보는 언제 끝이 날 것인지 두렵다. 차마고도는 왜 생겼나. 차마고도는 누가 만들었을까. 끝도 없이 설명할 수도 없이 이어지는 길이 그 길이다. 가던 길을 멈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돌아 갈 수도 없는 그 길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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