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졸업날의 단상

꿈꾸는 세상살이 2008. 3. 3. 06:24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 문득 생각나는 노랫말이 있다. 생각해보니 생각할수록 빛이 나는 졸업장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여겨진다. 내가 이 노래를 불러 선배들을 떠나보내고, 내가 이 노래를 들으며 졸업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듣는 이나 부르는 이 모두가 코끝이 찡해오고, 급기야 눈물이 앞을 가리기 일쑤였었다. 그런가하면 월사금이나 육성회비를 납부하지 못했다고 집으로 돌려보내던, 매정하고 인정 없는 냉혈인간으로만 여겼던 선생님마저 고개를 돌리고 눈가의 이슬을 닦던 시절이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좋은 일이나 궂은일을 함께 겪었고, 서로를 너무도 잘 알던 학생들에게 졸업은 곧 헤어짐이요 이별로 다가왔으니 생활에 커다란 변화로 느껴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회라는 바깥세상으로 나간다는 두려움도 어린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하였을 것이다.

겨우 겨우 진정을 하였다가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에 다시 눈시울을 적시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당신들의 잔칫날이 되어버린 축사와 훈화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단어들의 열거로 이어졌고, 들려오는 내용과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처럼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졸업식이 드디어 ‘졸업식 노래’를 끝으로 기나긴 행사에 마무리를 하였다. 그러나 졸업을 하면 끝이려니 하였던 마음위에 영화와 같은 추억들은 떠나지 않고 자리 잡았다.

환경미화를 한다고 청소하고 꾸미던 일, 식량 증산을 위하여 퇴비를 만들던 일. 아름다운 사회를 위하여 길가에 꽃나무를 심던 일, 푸른 숲을 가꾸기 위하여 나무를 심던 일, 건강과 곡식 보전을 위하여 쥐를 잡던 일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기억들이 지금에도 새롭다. 

 

나는 그때 졸업식장에서 졸업장을 탔다. 개근상이나 모범상, 그리고 우등상처럼 졸업장을 탔다. 따지고 보면 졸업장은 모두 받는 것이 아니라 여느 상처럼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타는 것이었다. 어렵고 힘든 가정 상황을 모두 극복해낸 사람이 받는 것이었고, 부지런하고 열성인 사람들이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졸업장이 빛나는 상이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졸업장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활동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는 대가는 규정에 의하여 납부하였지만, 국가의 요구에 의하여 학교의 요구에 의하여 나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뿐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 대해서도 참여하였고, 기관의 요구대로 동원되기도 하였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사회를 위하는 것이고, 우리나라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하였기에 기꺼이 참여하였다.

따지고 보니 내가 받은 졸업장은 빛나는 졸업장이 분명하였다. 본분이 공부인 학생이 공부 외에도 많은 것들에 참여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빛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졸업장을 우러러 보았었다.


엊그제 딸아이가 졸업을 하였다. 이제 학생의 신분에서 사회인으로 출발하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간의 길고 긴 시간동안 에너지를 축적하고 준비를 하였던 것들을 사회에 환원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을 축하해주고, 국가와 민족의 한 축을 담당할 재목이 된 것을 축하해주는 그런 날이 된 것이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아이의 어깨가 무겁다. 양 손에 무거운 것을 들고 낑낑대는 모습은 아직도 어린아이다. 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들어 보아도 한 아름이고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기나긴 학창시절에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고, 옆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아이들이었다는 생각에 안쓰럽다. 이런 온실의 화초들이 뜨거운 태양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언제까지 그늘막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지는 또 다른 우리의 과제로 남는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던 그 옛날 내 졸업식장의 훈화가 생생하다. 정말 부모된 자로서 자식의 졸업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한 것일까. 맑게 갠 하늘에 구름도 없이 따사로운 햇살이 비쳐오고 있었다. 날씨는 이렇게 좋은데 내 마음은 아직도 흐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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