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30분에 좀 이른 듯한 전화가 왔다.
사전에 예고된 준비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들렀다가 가야 하므로 일찍 오라는 전갈이 온 것이다. 어차피 오늘은 문학회 행사가 있는 날이라 비워 놓은 일정이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서둘러야 하였다.
대전에서, 익산에서, 군산에서, 전주에서, 광주에서, 여수에서 담양으로 모이기로 한 날이다. 가는 길은 복잡하더라도 국도를 이용하여 가기로 하였다. 여기 저기 볼 것도 많고, 자연의 부름을 마다 할 수가 없었기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여러 곳에서 모이는 관계로 최종 목적지가 아닌 중간 도착지에 모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모이기로 한 시각은 오후 1시30분이었으나, 중간에 찾아가는 과정을 생각하면 점심은 이동중에 먹어야 하였다. 마침 고향이 순창인 회원이 있어 그곳 사정에 밝은 것은 다행이었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 오찬을 들었다.
우리가 찾아 간 순창의 한정식집은 고급 요정의 한정식이 아닌 일반 한정식이었는데, 전라도 특유의 푸짐한 음식상에 맛 또한 푸짐하였다. 빨치산으로 유명한 회문산이 있고,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상자를 냈던 곳이 순창이고 보면 어딘지 조용하고 외진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정말 전형적인 시골로 날이 갈수록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여느 농촌이나 다름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가까울수록 눈에 비쳐지는 풍경 속에는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가 많아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던 담양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이 이어지고, 관방제림의 울창한 나무들이 건물을 가렸다. 그런가하면 내 눈에 익은 금성면의 천변 초경량비행장도 비쳐졌다. 우리는 어느새 담양에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담양은 나에게 낯익은 곳이다. 물론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내가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찾았던 곳이다. 연전에 장미 재배용 유리온실을 지으면서 신발이 닳도록 찾았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관광지로서 학습지로서 몇 번이나 더 찾았던 곳을 이제는 문학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다.
우리는 정해진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소쇄원에 도착하였다. 간단한 인원파악을 하고 입장을 하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원림이라는 이름답게 방문객도 많았다. 그런데 혹시나 대도시에 인접하여 위치한 관계로 그냥 스쳐가는 나드리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나의 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거진 녹음에 하늘마저 가리운 나무들이 빼곡한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왔다.
마침 한무리의 일행을 만났다. 차림새로 보아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분명하였다.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인솔하는 느낌도 없었고, 다음 시간을 위하여 재촉하는 이도 없었다. 이들은 어쩌면 내일 5.18을 위하여 오늘을 준비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하고 부족한 물품으로도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소쇄원을 찾았지만, 어느 목적지을 향하여 가는 과정으로 소쇄원을 찾는다면 애초에 정원 숲을 만들 당시의 의도를 벗어나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가 문학인 단체라는 것을 아신 문화해설가는 설명이 그칠줄을 몰랐다. 유래며 특징이며, 현재의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셨다. 우리의 다음 계획은 전혀 아랑곳없이...
아름드리 나무를 기어오르는 다람쥐가 귀엽다. 여느 곳처럼 청솔모가 아닌 다람쥐가 오고 가는 것을 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원이 아닌 자연에서 영영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다람쥐가 내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비록 개울에는 물이 마르고, 아직도 잎이 무성하지 못하여 어딘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흡족한 것은 확실하였다.
생오지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그곳은 글자 그대로 오지요, 아주 심각한 정도라는 접두사가 붙을 정도로 오지였다. 가는 도중에 차를 만나면 영락없이 한대는 후진하여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요즘 왠만한 곳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건만, 여기는 약 1킬로미터나 콘크리트로 포장된 외길로 이어져있었다. 주변에는 산이 있고, 내가 있으나 언제 사람의 손이 닿을지 모르는 그냥 그런 곳이었다. 주머니 속에서는 연신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사람이 그리워 외롭다는 아우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내 들려오는 소리는 이제 친구를 만났다는 소리였다.. 그러기를 몇차례 반복하고 나서 이제는 영영 무소식이다. 넓은 잔디밭을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강아지도 만나는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난리다. 하루종일 있어도 보이는 사람은 둘 뿐이니, 틈만나면 강아지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던 것이 버릇이 된 탓이다.
그런 곳에서 문순태 작가가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라도 쉽게 찾아오지는 못하는 그런 곳에 살고 있었다.
물론 미리 예약은 되어 있었지만, 우리가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고 잠시 둘러 본 뒤 문학 강연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주로 시에 관계되는 강연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염두에 둔 강의였다. 주제가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 문학회의 소설 작가분들이 많은 열성을 보여 주셨다.
나는 내용중에 시력이 약해지니 세상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와 닿았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면서 사물을 보는 힘은 약해지는데, 어찌된 것인지 인간사 세상일은 더 뚜렷하고 확실하게 더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전에는 극렬한 진보나 극렬한 보수가 세상을 이끌어가고 그도저도 아닌 중간파는 그냥 줏대도 없는 사람인줄 알았단다. 그러나 눈의 힘이 약해지면서 다시 보는 시각에는, 어느 쪽도 아닌 그냥 소신도 없어 보이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뚜렷한 주관대로 살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너무도 진지한 강연과 토론으로 우리의 일정은 많이 늦어졌다. 기념 사진도 찍는 둥 마는 둥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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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문학관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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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의 식영정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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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마무리를 하더라도 귀가하기까지는 늦은 시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찬 시간이 되었는데 그냥 갈 수도 없었다. 우리는 주변의 식당에 들러 저녁을 차렸다. 오늘의 행사를 마무리하는 것도 바쁘고, 다음 행사인 여름철 계획도 빼 놓을 수 없었다.
대나무의 고장이라는 담양답게 죽순무침이 반찬으로 나오고, 대나무 밭 그늘 속에 3년이나 묻었다가 꺼낸 김치는 별미라기 보다 차라리 아주 귀한 음식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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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학 기행지를 담양으로 택한 것은 잘 된 일이었던 것 같다. 담양이 가지고 있는 대나무 하나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발길을 모으고 있다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일이나, 담양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인 자산은 그 어느 곳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발로 답사하지는 못하였어도 주변에 산재해 있는 여러 곳들이 모두 값진 보배임에 틀림없었다. 특별히 담양군청에서 얻은 지도를 보면서 여기저기 나타나는 모든 곳들이 조상의 숨결이요 우리의 자산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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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먼 길 오고가는 수고로움과 오늘 행사에 대한 의견들이었다. 오늘 시간을 내어 참석하신 회원들과 특별히 부부동반으로 참석하신 회원들, 그리고 비회원으로서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모두모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일일이 인사를 못 드리는 대신 나는 이 글을 드린다. 늦은 시각이지만 피곤하더라도 오늘 이 글을 올려야 그 분들의 감사함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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