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미륵사지 석탑 (국보11호)

꿈꾸는 세상살이 2008. 6. 9. 10:45
국보 제11호.

 

 

 

 

 
전라북도 익산시(益山市) 금마면(金馬面) 기양리(箕陽里)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시대 화강암석탑.

백제 30대 무왕(武王) 때 건립한 것으로 6층까지 남아 있던 것을, 2001년에 해체하기 시작하여 10년 예정의 복원사업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6층까지의 높이는 14.24m였다.

이 석탑은 기존의 목조탑 양식을 변형시킨 한국석탑의 조형(祖形)이며, 사각형의 석조기단 위에 서 있고 정사각형의 평면을 가진 각층 탑신이 모두 사방 3칸으로 되어 있다. 1층 탑신은 사방으로 배흘림을 가진 방주(方柱)를 세우고 그 모서리는 둥글게 하였다. 좌우변의 벽면을 석재로 쌓고 중앙에 버팀목을 세웠으며 내부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통로는 내부 중앙에서 십자로 교차되며, 교차점에는 찰주(擦柱)가 서 있다. 1층 탑신의 기둥은 초석 위에 놓였고, 기둥 상부에 창방석(昌枋石)과 평방석(平枋石)이 있으며, 그 위에 소벽을 만들었다. 3단 층급형 받침돌을 쌓아서 두공형식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옥개석으로 덮었다. 옥개석 상부에는 2층 탑신을 받치기 위한 괴임돌 1단이 있는데, 3층부터는 2단으로 되어 있다. 2층 이상에는 소석벽이 없어지고 탑신 높이도 올라갈수록 체감된다.

균형이 잡혀 있고, 돌조각도 섬세하여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주며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출처 :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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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무왕과 신라의 선화공주의 전설이 내려오는 미륵사지 내에 있는 석탑이다.이 석탑은 미륵사지 서원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존재하고 있는 국내 最古, 최대의 석탑으로 석조 건축술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국석탑의 始源으로 보고있다.
 
백제 무왕때(서기 600~641) 건립된 한국 최초의 석탑으로서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해가는 과도기적 구조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석탑으로 6층까지 남아있다. 최근 붕괴의 위험이 있어 해체 복원 공사중이다.
(아래 중앙부의 탑을 전체 둘러 싼 조립식 건축물 안에서 해체 작업 중임)
 

 

아래는 해체 전 탑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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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미륵사가 있었다는 절 터를 품고 있는 미륵산의 돌 성벽.

다른 성벽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것이 특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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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0 토요일

어제부터 올거라던 비는 오늘 아침 10시가 되어서 오기 시작하였다. 아침에 배산에 다녀 온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리기 시작한 비였다. 요즘 일기가 건조하여 흠뻑 내렸으면 하던 비였다. 그래도 오늘 할일이 많은 형편으로는 큰 비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전에 여기저기 일을 마친 후 오후에는 다시 미륵산 산행을 하였다. 미륵산은 전국에 몇 군데 있는 산이지만 여기 익산에도 있는 유명한 산이다. 산의 전체 높이라야 440미터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서동과 선화의 사랑 얘기가 전해오는 미륵사가 있었던 산이며, 그 사찰의 경내에 있던 돌탑이 바로 미륵사지 석탑이다.

우리는 이 탑을 국보 제11호로 지정하여 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동탑과 서탑으로 나뉘어 있는데, 서탑은 전체 9층 중 6층의 형태가 남아있고, 동탑은 아예 흔적조차 없어진 형편이다. 그래서 동탑이 있었던 자리에 10여년 전에 우선 복원하였고, 서탑은 무너져가는 모습을 강점기때 시멘트로 땜질하여 발라놓았던 그대로 보존하다가 이번에 해체 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서탑은 탑 주위를 통째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하나씩 하나씩 돌을 들어내 가며 해체하면서 어떻게 하여 1000년 전에 쌓은 돌탑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 왔는지 연구 검토중이다. 그리고 해체도중에 금동 향로가 나와 세간을 놀라게 하면서 오늘 현재도 맨 아래층의 돌들을 모두 해체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렇게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공사비의 부족으로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