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잡다한 무엇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꿈꾸는 세상살이 2008. 6. 20. 10:33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은 장마 둘째 날인데 갑자기 맑은 하늘이 보였습니다. 덩달아서 내가 뭔가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해 주었는지, 어떤 활력소를 주었는지, 어떤 기쁨을 주었는지, 돌아보니 그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아침 프로에서 63빌딩을 올라가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는 동안 아무 말도 없었고, 괜히 시계만 쳐다보고 머리만 긁적이다가 올라갔습니다. 그러다가 옆의 거울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도 옆의 거울을 보다가 서로 거울을 통하여 바라보았습니다. 그 전에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정말 벌 받는 자세 그대로였습니다. 둘이는 계면쩍게 웃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생활의 대변인가 합니다. 만나면 미소짓고, 인사하고, 대화하고, 칭찬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63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을 것이니까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일수록 내가 먼저 인사하여야 맞을 듯합니다.


내가 미워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는 젊고 예쁜데다가 몸매도 잘빠졌습니다. 교양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미워합니다. 나를 가리켜 자기 자식에게 말하길 나쁜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는데 그 여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마침 나는 먼저 와있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뛰어오기는 하였지만 5살 정도의 아이들 때문에 빨리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문이 닫히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문이 그대로 닫히는 순간 '저 아저씨 나쁜 사람이다. 그치'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누른 버튼은 열림 버튼이 아니고 닫힘 버튼이었었나 봅니다. 비록 실수하여 닫힘 버튼을 눌렀다고 하여도 내가 나쁜 사람입니까. 시간이 다 된 문은 자연적으로 닫히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사 온지 며칠 안 된 그 사람은 내가 앞집에 사는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반면 아이들에게 할 말이 없으니 그냥 그렇게 한 말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 뒤로 나는 그 여자를 미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내 뱉는 한 마디가 어떤 상처를 주는지, 알고 가르칠지 모르고 가르칠지 몰라서 미웠던 것입니다. 더구나 힘 있는 리더는, 훌륭한 지도자는, 권위 있는 교육자는 남에게 쉽고 빠르게 그리고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여자를 이제 그만 미워하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미움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가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 여자를 미워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좋은 일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 중에 혹시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갑자기 친구들이 생각나서 만사 제쳐두고 연락을 해봅니다. 내가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2008.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