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이사를 하였다. 내가 이사를 한 것이 아니고 나는 같은 교회에 나가고 있는데 그만 교회가 이사를 한 것이다.
전에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걸어서 가도 10분이면 되는 거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20분을 걸어야 한다. 그전 같았으면 가까운 거리니 대체로 걸어서 갔고 우물쭈물 하다가 늦으면 차를 타고 갔었다.물론 너무 가까워서 교회 버스는 정차하지도 않았기에 어떤 날은 승용차를 타고 갔었다. 사실 걸어서 10분인 거리를 승용차로 가려니 타고 가는 나도 미안한 것도 내놓고 말할 수 없는 곤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걸어서 20분 거리니 우물쭈물 할 형편이 아니다. 미리부터 시간을 맞추고 집을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조금 늦으면 바삐 걸어야하고, 아니면 뛰다시피 하여야만 한다. 오히려 거리가 멀으니 운동삼아 걷기로 마음먹고나서니 부지런해졌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가끔씩은 교회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얼마간 버스를 이용하면서 정을 들여갈 즈음, 다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에 가는 것이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빠지지 말고 열심히 다니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만 어린애도 아닌 다 큰 성인들에게 왜 빠졌느냐고, 언제 나올거냐고, 같이 나오라는 등 말들이 많아서 고민이다. 버스를 타지 않으면 얼굴을 부딪치지 않으니 최소한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못하는 마음은 헤아려주지도 않으면서 ...
이해를 하고 마음을 다독여주는 말은 안하면서 ...
그렇게 하면 안되느니 되느니 하는 말들이 듣기 싫어진다.
그렇게 하면 되고 안 되는 잣대는 어디다 기준을 두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전에 어떤 사람이 화장품을 사라고 했었다. 그 화장품은 방판인데 많이 알려진 화장품이 아니었다. 처음 듣는 제품을 쉽게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가 화장품마다의 특성이 있어서 피부에 맞아야 되고 부작용이 없어야 되는 등 변수가 많은게 화장품 아니던가...
만날 때마다 사라고 하나 팔아달라고 하던 생각이 난다.
그 뒤 그 사람은 이제 화장품 장사는 그만 두었다고 하였다. 잘 했다고 하였더니 이제는 은행 신용카드를 발급하니 하나 신청하란다. 있다고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 발급받으라고 하였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그 문제로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고 만나는 것이 두려운 처지가 되어버렸다.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짓는데 쌀을 팔아달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쌀을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 그래도 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침 사 놓은 쌀이 있어서 지금 필요도 없는데 팔아달라니 부담이 되었다. 식구가 적으니 한 번 사놓으면 여러 달 동안을 먹는데 오래보관하면 벌레가 나서 고역이라 걱정이 되었다. 정말 작년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쌀벌레와의 전쟁이라 할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지낸 경험도 있다. 그렇다고 누구든지 먹는 쌀인데 마치 화장품 대하듯이 안 살 수도 없었기에 고민에 빠졌다.
화장품 장사를 하니, 쌀 농사를 지으니 팔아달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떳떳하게도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살 형편이 아니라는데도 굳이 지금 하나 팔아달라는 자세가 문제다.
남들이 볼때는 같은 교인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자기들끼리만 장사 해먹고 자기들끼리만 돕고 교회에 안다니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장수는 자기 혼자지만 팔아주는 사람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부탁을 받는데 그때마다 다 사 줄 수도 없고 하나도 안 사 줄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경우가 허다하다.
큰 교회에서는 보험회사 직원이 하나 둘도 아닌데 만약 그 사람들이 모두 부탁을 하면 나는 보험을 몇개나 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농사 짓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닌데 대체 쌀을 사 주기로 하면 나는 쌀을 얼마나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세상의 일이 모두 부탁은 할 수 있으나 억지로 하여 부담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리라생각한다. 세상에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모두가 도우며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노력해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강하게 부탁을 해도 되지만, 억지로 하면 부담이 되는 부탁은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출 줄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만약 내가 교회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거나 다시 승용차를 타고 교회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부작용이 생긴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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