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내꿈을 접고 길을 떠난다.

꿈꾸는 세상살이 2009. 12. 9. 16:11

내꿈을 접고 길을 떠난다.

내가 작가라는 다른 별명을 가진지도 이제 5년이 넘었다. 남보다 월등하여 새로운 이름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집단에 등록을 한 것에 대하여 기쁘게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누구나 배우는 태권도를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지난 고등학생 때 입단한 것과 같은 정도로 비유하면 어떨까. 그래도 나는 기쁘고 즐거웠다. 누가 물어보면 나를 작가라고 소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하는 일중의 또 다른 일로 남을 유익하게 하거나, 남보다 잘하는 것이 있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작가라는 이름이 그다지 기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그래도 나은 것이 이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자아도취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시에 재단법인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그야말로 문화를 총 망라하는 재단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시설과 조직으로는 우리시의 문화관련 살림을 꾸려가기에 부족하다는 내용도 들려왔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현재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정말 필요하겠거니 하면서 나도 찬성을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삼거리가 나왔다. 내가 가는 앞길에서 여러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서로들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바람을 등지고 가는 방향이라서 앞길을 전혀 알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돌을 집어 자리를 잡아주었다. 비록 내가 놓은 돌은 작았지만, 방향을 잡아주는 아주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지금 내가 바람을 맞으며 걸어온 길에서 보았던 상황은 나 혼자만이 아는 사실로, 그것은 확실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나도 재단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는 일이 나와 무관하지도 않았고, 평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였다. 거기다가 나도 초석을 놓았으니 남다른 애착이 가는 때문이기도 하였다. 정말 누구나 공감하는 단체가 되려는지 공무원출신들을 모아 관변단체로는 만들지 않겠다고 하는 약속도 들렸다. 나는 호기로 보았다.

지금쯤이면 단체가 조직되려니 하면서 내심 기다림 속에 준비를 하였다. 이런 계획을 내가 먼저 알고 있다는 것이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짐을 하고 또 기다렸다. 그런 중에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났다. 이제나 저제나 하던 일이 자꾸만 지연되면서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어언 2년6개월이 되면서 결국 포기를 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면서 다른 일을 못하면, 나에게는 그것도 손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이 일이 성사가 되어서도 내가 얼마나 만족을 할지도 모를 일이며, 더구나 성사가 된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준비하고 기다린 시간이 아까웠지만 그래도 다른 선택을 위하여 접어야 하는 순간이 되었다.

그 뒤에 나는 우리지역의 문화재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많은 문화재를 우리 시민들이 가까이서 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료를 찾아보고 현장을 답사하면서 사진을 찍는 일등은 평소 나의 일상취미였지만 그래도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였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고, 안내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행하는 일에 적지 않은 비용도 들었다. 이렇게 모으고 정리한 자료들을 우리시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서 신문에 연재하기에 결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재단결성 공고가 붙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기다리다 겨우 포기를 하고 다른 일을 찾았는데, 이제 와서 다시 매달릴 것인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도전하는 것이 아름답다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선택에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원서제출 마감날 나는 결국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전부터 잊으려 애써 노력은 하였었지만, 공무원 경력 3년 이상자라는 조건이 붙은 상황에서 나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인식한 때문이었다. 왜 5급이상 공무원출신이어야 했을까. 왜 3년 이상 공무원경력이 있어야 했을까. 어째서 다른 유사경력자는 단체장의 경력증명서류를 첨부하라고 했을까. 그러면 정말 그 유사경력을 인정하기는 하는 것일까.

나는 나이 54살이 되어 또 하나의 작은 꿈을 접었다.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 꿈마저 내품을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밝은 대낮에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내 꿈이 그렇게 허공에 떠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냥 문화재 답사나 가야할 모양이다. 시민들이 우리 시에 있는 문화재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한 가닥 하소연을 핑계 삼아 오늘도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