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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꿈꾸는 세상살이 2010. 4. 29. 14:22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어제 저녁에 PD수첩을 보았다. 그 내용이 그 내용일 것이니 다른 프로를 볼까도 하였지만 이런 판국에 용기를 낸 것이 가상하여 후한 인심을 썼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명숙 전총리에 대한 조사가 생생하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눈에 어려 차마 다른 채널로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송이 끝나갈 때쯤에는 설마설마 하며 눈 비비고 쳐다보던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잘못을 들여다보고 처방하는 사람들은 흠결이 없는 선량한 사람일 것이라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음을 확인하는 프로였다.

 

세상에서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할 수가 있고, 내가 하는 일은 남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기에 유독 사법부만 깨끗하고 청렴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다만 남들이 이해가 가고 그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해지기를 바랄 정도였다. 남들이 술을 먹으면 나도 술을 먹고, 남들이 노래방에 가면 나도 노래방에 가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인 줄 알았던 내가 바보였다는 결론이 났다.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이 많이 있음을 짐작하지 못한 내가 바보였다.

소위 권력을 가지고 남을 치리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하는 것은 물론이며, 그 위에 남들이 하지 못하는 그 뭔가까지 해야 하는 사람들이란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조심하고 근신하며, 아픈 상처를 도려내겠다고 했던 말도 악어의 눈물이었음이 확인되었다. 그것은 마치 청와대 뒷산에서 신 새벽에 아침이슬을 들을 때 뼈속깊이 아팠다던 말이 그냥 립서비스였던 것과 상통한다.

남들에게는 다 나은 상처도 흉터를 확인해가며 칼로 후벼파던 사람들이, 자신의 곪은 상처에는 방부제를 뿌려가며 혹시나 굳으면 살이 될까봐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수술로도 어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살이 되지 못할 부위는 아파도 참고 잘라내야 하며, 만약에 너무 많이 퍼져 다 절단할 수가 없다면 안락사를 시키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1년 6개월 전에 부도가 나서 지금은 다른 회사가 들어온 건물을 찾아가서는, 부도난 회사를 거명하며 압수수색하였다고 보도하던 그들이었다. 가공된 증여자가 일관되게 진술한다며 없는 죄를 만들어 얽어매던 자들이, 자신들에게 돈 상납 술 상납 성 상납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는 사람을 두고는 불리한 사건에 연루되어 거짓진술 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당사자에게 좋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일삼는 무리들이다. 우리는 지난 공안정부 때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썼던 것을 기억한다. 또 사람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고문을 가해놓고도 그냥 미안하다고 말만 하던 자들임을 기억한다.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있다면 지금과 같이 편협되고 일방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가 업무 역할적으로 죄를 조사하는 사람이라 한다면, 그는 공정하고 온당하게 조사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피해를 입은 사람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것이며, 어느 누구든지 마음 편하게 사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한 사람들이 몇 되지 않는 악한 사람들에게 지배당하고 사는 세상은 합당한 세상이 아니다. 몇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에게 나타나야 할 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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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