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32. 구례줄풍류와 함께 지방의 대표정악인 이리향제줄풀류

꿈꾸는 세상살이 2010. 5. 6. 11:29

이리향제 줄풍류(裡里鄕制 줄風流)

 

줄풍류는 전통적으로 의식에 따르는 음악이었다. 1985년 9월 1일 줄풍류를 중요무형문화재 제83호로 등록하였으나 맥을 잇는 과정이 너무나 어려워, 지방에 현존하는 풍류 중에서 제대로 격식을 갖춘 이리향제줄풍류의 정통성을 인정하면서 1987년 11월 1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3-나호’로 지정하였다. 현재는 익산시 신동 806-1번지의 이리향제줄풍류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3-가호에는 구례향제줄풍류가 있다.

 

전통음악에서의 풍류란 정악(正樂)을 의미하며 대표곡인 영산회상(靈山會相)의 통칭이다. 다시 말하면 풍류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의식 따위에 정식으로 쓰던 음악이며, 사전적 의미로는 멋스럽고 풍치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이라고 풀이한다. 서울중심의 풍류를 경제(京制)풍류, 지방중심의 풍류를 향제(鄕制)풍류라고 한다. 향제는 경제에 비하여 지방의 호방한 성격을 반영하는 음악성이 나타나고 흥취감이 높다.

구례향제줄풍류는 전남 구례에 사는 김무규(金茂圭)를 예능보유자로 하며, 다스름(調音), 상영산(上靈山, 본영산), 중영산(中靈山), 세영산(細靈山, 잔영산), 가락덜이, 삼현도드리(三絃還入), 도드리(細還入), 하현도드리(下絃還入), 염불도드리(念佛還入), 타령(打令), 군악(軍樂), 계면가락도드리(界面還入), 양청도르리(兩淸還入), 우조가락도드리(羽調還入), 굿거리 등 15곡의 방대한 조곡(組曲)으로 되어 있다. 국립국악원에서 전승되는 경제줄풍류에는 다스름과 굿거리가 없다. 다스름에서 중영산까지를 ‘본풍류’라고 하고 세영산에서 군악까지를 ‘잔풍류’라 이르며 계면가락도드리에서 굿거리까지를 ‘뒷풍류’라 한다. 본풍류는 한없이 느려 은은하고 유유자적하며 잔풍류는 약간 빨라서 유장하고 꿋꿋하며 뒷풍류는 밝고 화창하다. 이 음악을 모두 연주하는데는 약 70분 정도가 걸린다.

 

풍류에 사용되는 악기로 구분해보면 관악기 중심의 풍류는 대풍류라 하며, 피리 2개, 대금 1개, 해금 1개, 북 1개, 장고 1개가 따른다. 그런가 하면 현악기 중심의 풍류를 줄풍류라고 하는데, 현재는 익산, 정읍, 구례 등에서만 운영된다. 켜는 악기로는 거문고, 가야금, 해금이 있고, 부는 악기로는 대금, 단소, 세피리 등이 있는데 타악기인 양금과 장구를 곁들인다. 이리향제줄풍류는 1시간 12분의 연주시간이 소요된다.

줄풍류라는 이름답게 줄을 켜는 악기가 주류를 이루지만 생김부터가 특이한 양금이라는 악기도 있다. 양금은 주석과 철의 합금으로 만든 철사를 14줄 매고 대나무채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이다.

양금은 원래 중동지방의 악기로 덜시머(Dulcimer) 또는 솔터리(Psaltery)라 불리다가, 십자군 원정 때 서양에 전파되었고 유럽을 통해 각국에 보급된 악기다. 예수회선교사인 마테오리치에 의하여 1580년경 중국에, 우리나라에는 영조때 청나라를 왕래하던 실학자들이 전해왔고 홍대용이 처음 연주하였다고 한다. 서양금(西洋琴), 서금(西琴), 구라철사금(歐邏鐵絲琴)으로도 불렸으며, 19세기 후반부터 영산회상과 가곡 등의 연주에 쓰이게 되었다.

양금은 14줄에서 18음을 낼 수 있고, 오동나무 통에 주석과 철의 함금을 사용한 철사를 매고 해죽(海竹)채를 사용한다. 소리는 덜시머(우아한 음색)라는 이름답게 맑고 영롱하다.

줄풍류는 원래 청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주자 스스로가 밝은 심성을 함양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정악은 같은 거문고를 위주로 연주를 하지만, 그 음악적 특징이 민속악의 거문고 연주와 다른 것이다. 민속악이 가슴적이고 낭만적이며 외향적이라면, 정악은 머리적이고 고전적이며 내향적이다. 즉 자기 수양적이고 교육적인 음악이 바로 영산회상의 줄풍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거문고는 빠르고 요란한 곡을 타지 않으며, 교양이 없고 속된 사람 앞에서는 타지 않으며, 장터나 번잡한 곳에서는 타지 않으며, 정좌하지 않고는 타지 않으며, 의관을 바로하지 않고는 타지 않는다는 금기사항이 있다.

오로지 향제 줄풍류만을 연주하는 부류와 산조와 줄풍류를 같이 연주하는 부류로 나누기도 하며,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오다 보니 풍습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예전에는 각 지방마다 풍류방이 있었는데, 특히 호남지방에서는 정읍, 흥덕, 부안, 김제, 옥구, 강진, 목포 등에서 번성하였다. 이들은 풍류회 또는 율회를 조직하여 그 맥을 이어왔다.

익산에서는 1940년 초기에 갈산동 하일환율방에서 처음 풍류를 즐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68년 9월 10일 도교육위원회로부터 이리정악원 설립인가를 받았으나, 당시 사회 현상에 따라 차츰 그 열기가 식어갔다. 그러던 중 1972년 6월 1일 잔여 회원을 모아 이리정학원으로 재정비하면서 1985년 9월 1일 향제 줄풍류연주를 중요무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받기에 이른다. 이때 강낙승옹이 가야금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고, 1987년 11월 11일 중요무형문화재인점을 감안하여 줄풍류보존단체로 지정받기에 이른다. 1998년 4월 15일 전수회관을 건립하였고, 현재는 전북 익산시 신동 806-1 신동사무소 3층 주민자치센터내에 ‘이리향제줄풍류보존회’가 조직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후로 매년 정기공연은 물론 일본, 싸이판, 러시아, 인도, 필리핀, 캄보디아, 대만 등지에서 초청을 받아 연주하는 등 국위선양에도 한몫하고 있다. 2009년 11월 7일에는 이리향제줄풍류보존회장에서 제27차 정기공연을 한바 있다.

이리향제 줄풍류는 지방의 율방에서 전하는 현악영산회상을 전승한 것이다. 그래서 국립국악원의 줄풍류와 차이가 발생하였다. 이리향제 줄풍류는 국립국악원에 비하여 장을 나누는 것이 세분화되어 있으며, 선율도 간음이 더 많다. 또 악곡 명칭에 있어서도 2곡이나 더 많으며, 추가로 다스림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그 순서를 보면 다스름, 본영산, 중영산, 세영산, 가락덜이, 상현환입, 도드리, 하현환입, 염불, 타령, 군악,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 풍류굿거리 등으로 구성된다. 이리향제 줄풍류의 특징은 단소가락이 소박하고, 전체적으로 농현이 굵고 흥겨운 맛이 있다.

예능보유자 강락승은 1916년 2월 2일 무주군 부남면에서 태어나 26세부터는 남원의 권번(券番)이었던 장봉호로부터 북과 가야금을 사사받았고, 30세에 흥덕의 진양수로부터 향제줄풍류 가야금을 사사받았다. 31세에 부안의 정정열로부터는 가곡, 가사, 시조를 사사받고, 37세에 정읍의 김용근과 익산의 신종하로부터 단소 풍류를 사사받아 오늘에 이른다. 강낙승옹은 2010.02.13 수(壽) 94세로 별세하였다.

이리향제줄풍류는 거문고의 김규수옹을 예능보유자로 추가 지정하고 있다. 김규수옹은 1924년10월16일생으로 전석동과 김병두, 강락승으로부터 사사받았으며, 2003년 2월 2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3-나호 이리향제줄풍류의 거문고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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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5  익산투데이 게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