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36. 익산 삼부잣집과 둘레길이 있는 함라 옛담장길

꿈꾸는 세상살이 2010. 6. 26. 09:33

익산함라마을 옛담장(益山咸羅 舊塀墻)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314번지 일대에 오래된 한옥들이 많이 있다. 더불어 담장도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일부는 보수를 하였지만 2006년 6월 19일 그 지역의 담장을 등록문화재 제263호로 지정하였다. 소유자는 박진순 등 여러 명의 개별소유로 되어있다.

 

함라면 함열리는 개천의 남쪽과 북쪽을 갈라 천남(川南)과 천북(川北)으로 구분하였는데 지금은 복개(覆蓋)를 하여 그런 구분이 필요 없어졌다. 이곳은 삼부자(三富者)집으로 통하는 마을이다. 함라소재지의 함라파출소 옆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작은 주차장이 보인다. 여기가 바로 문화재로 등록된 ‘익산 함라마을 옛 담장’의 중심점이다.

 

전국적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담장은 경남고성 학동, 경남거창 황산, 경남산청 단계, 경북군위 부계 한밤마을, 경북성주 한개, 전북무주 지전, 전북익산 함라, 전남강진 병영, 전남담양 삼지천, 대구 옻골 등 10개소이다. 이 돌담들은 전문 장인의 손을 빌린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세대를 이어가며 만든 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중시해 문화재로 등록하게 되었다. 이들은 길이가 짧은 곳은 700m, 긴 곳은 10㎞에 달하는 곳도 있다.

 

이 마을은 함라산을 주산으로 하여 와우산을 포함하며, 전체적으로는 포근하게 감싸는 형상을 하여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고장이다. 그러나 산이 낮아 한때는 식수가 부족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인근에 호남3제의 하나인 황등제가 있어 비옥한 농토를 이루었고, 전국에서 유명한 3부자가 살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다행이도 이들은 농민들로부터 반감이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영남에서 유명한 경주 최부자가 있었다는 것에 비교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런 고장이다.

 

담장은 이들 가옥을 위주로 하여 농가의 담장이었으며,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지만 토담, 돌담, 전돌을 사용한 담 등 다양한 형태의 담이 섞여있다. 돌담은 대체로 평쌓기 방식으로 축조되었으며, 지붕은 한식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를 써서 처리되었다. 담장의 높이는 일반 농가의 담장이라든가 주택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집들에 비하여 약간 높은 점이 특징이다.

 

여기에 돌담길이 형성된 사유는 누가 뭐래도 3부자집의 영향이 크다. 이들은 넓은 대지와 많은 건물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울러 기다란 담장을 필요로 하였다. 이런 담장들은 자연스레 골목길을 형성하였고, 다른 집들에게도 돌담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것이다. 특히 차순덕 가옥의 담장은 담장의 외벽에 거푸집을 대고 황토 흙과 짚을 혼합하여 쌓는 보기 드문 전통적인 방식으로 축조되어 있다.

 

당시 전국에서 단 90 여 명만이 만석꾼으로 통하던 때에, 이곳 함라의 함열리에 3명이 살았다는 것은 진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혹은 작은 골목길을 건너서 사이좋게 모여 살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 원인은 이곳 함라가 산이 높지 않으면서 들이 많고, 교통 또한 편리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빼놓을 수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어질고 공정하며, 인심 좋은 후덕함이 그 첫째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기에 서로가 상부상조하며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든다.

 

전통가옥들과 함께 마을 한편에 자리한 문화재자료 제85호 ‘함열향교 대성전’은 전통마을로서의 품위를 더해주고 있다. 물론 새로 쌓은 돌담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해온 옛 돌담길의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다. 인근에는 돌담과 어우러지는 오래된 건축물로 삼부자집인 이배원가옥, 조해영가옥, 김안균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 조해영가옥의 입구에는 향토유적 제11호 ‘김육불망비(金堉不忘碑)’도 같이하고 있다.

 

예전에 호남선 철도가 놓일 때 함라의 유지들과 지방 세력가들이 반대하여 함열로 변경되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그러나 지금 이곳 함라면 함열리 마을 앞에는 기존 도로 외에 새로운 4차선 도로가 생겨났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아마도 함라면의 함열향교에 계신 영혼들도 그만 허락하셨나보다.

함라에서 군산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 열렸고, 반대 방향으로는 천년고찰 숭림사 그리고 강경으로 가는 국도와 만나는 곧은길이다.

 

함라마을 돌담길은 덕수궁돌담길과는 다른 맛이 있다. 웅장하고 격리된 느낌보다는 따스하고 고향집 같은 정감을 준다. 규격에 맞춰 다듬은 돌을 쌓고 마무리를 한 것이 아니라, 흙을 쌓으면서 무너지지 말라고 받침을 넣은 돌이기에 비뚤빼뚤 거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좋다. 함라의 옛담장은 쌓다가 흙이 모자라면 돌을 더 넣고, 돌이 모자라면 흙을 더 넣으면 되는 편리한 담장이라서 좋다. 인공적인 가공보다는 자연적인 원 모습이라서 좋다. 땅이 낮으면 한 줄을 더 쌓으면 되고 땅이 높으면 한 줄을 덜 쌓으면 되는 쌓기 쉬운 담장이라서 좋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낸 재료가 아니라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본래의 재료이기에 좋다. 쌓다가 잘못되면 땅속에 묻고 다시 쌓으면 되는 친환경이라서 좋다. 자연과 하나 되는 담장이라서 우리 생활과도 하나 되는 담장이어서 좋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숨결이 묻어있어 정겨운 느낌을 주어서 좋은 담장이다. 주택의 재료와 어울리는 자연재료여서 좋은 담장이다. 이런 담장에 둘러싸인 주택에서 산다면 아토피나 성격변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좋을 담장이다. 무엇보다 고향의 맛, 구수한 된장의 맛을 간직한 담장이어서 좋다. 마치 무명옷을 빨았지만 다림질을 하지 않은 것처럼 쭈글쭈글한 아낙의 치마와 같아서 정겨운 곳이다.

 

최근에는 이 함라옛담장에서 숭림사와 입점리고분군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이 완성되었다. 전체적인 코스는 선사시대의 생활터전이었던 입점리에서 출발하여 천년고찰 숭림사로 이어지는 옛길이다. 마치 제주의 올레길과 같은데 포구에서 마을로 접어드는 자연스런 길이라는 뜻도 있다.

둘레길은 부담없이 아무런 고민없이 그냥 내 집에 드나드는 편한 길이라는 뜻이다. 물론 세태를 반영한 참살이용 등산로를 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의미가 있는 길이다. 3부자를 위시하여 함라의 양반들을 상징하는 양반길, 그냥 건강을 위해 이어지는 건강길, 세상의 무상함을 잊고 잠시 쉬어가라는 명상길, 병풍처럼 둘려있어 아늑한 병풍길, 이름도 성도 모르는 선조를 만나는 역사길 등으로 나뉜다. 어제는 그냥 다니던 길이었어도 오늘은 이런 이름을 붙여놓고 생각하면서 가면 한결 부드러운 산행이 될 것이다. 마치 옛 담장이 편안하고 정다운 느낌을 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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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3 익산투데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