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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퇴근이 있긴 있나요?

꿈꾸는 세상살이 2011. 4. 4. 10:01

칼퇴근이 있긴 있나요?

지난 목요일에 빌린 책을 반납하려는데, 오늘이 월요일이라서 쉬는 예가 많아 행여 허탕칠까 염려가 되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하여 보니, 마침 근무하는 월요일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책을 빌릴 때 보니 근무를 하는 날은 저녁 9시까지 근무를 한다고 하였고, 도서관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01분이었다. 부리나케 계단을 올라가는데 딸깍딸깍하며 내려오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다. 도대체 누가 이런데서 신발을 저렇게 신고 다니는지 궁금하여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나이 30살이 조금 넘었을까 하는 여성이 내려왔다.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거침없이 통화를 하면서 내 앞을 지나갔다. 여름 샌들을 신었는데, 묶으라는 끈은 묶지 않았으며 오히려 뒷쪽을 접어 신어 건들거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걸어도 소리가 나게 마련인데, 되는 데로 걸으니 소리가 요란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나를 만나면 조금은 주의를 기울일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던 나는 허탈감에 빠졌고, 지금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그녀는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짧은 치마에 얇은 망사를 달았고 너덜너덜한 레이스도 장식하였다. 그렇다고 초미니는 아니었지만 걸을 때마다 치마가 나풀거렸다. 그녀는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하여 고개를 숙여 가면서까지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지는 못했다. 키도 작으면서 얼굴도 통통하고, 하얗게 드러난 장단지도 통통한 그런 여자였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멀어졌고, 나는 한숨을 쉬면서 자료실에 닿으니 출입문이 굳게 닫쳐있고, ‘CLOSED’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6시 02분이었다. 나는 잠시 어떤 여자에게 한 눈을 팔았다지만, 그래도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스치는 생각에 지난 번 확인한 시간은 도서관 본점의 근무시간가 오후 9시까지였고, 지점은 오후 6시까지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떤 일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기분이 상했다. 그렇다고 다시 찾아오기도 그래서 일반사무실로 향했다. 일과가 끝나면 행정사무실에서 반납이나 기증 같은 일을 대신 받아주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나는 반납할 책 3권과 기증할 책 5권을 들고 있었다. 아무리 책을 기증한다고 해도 일부러 매번 찾아오는 것도 좀 곤란하여 이렇게 오는 김에 묻어서 하려고 별렀던 참이었다. 사무실도 이제 퇴근을 하려는지 다들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떤 여직원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손으로 책을 가리켰다. 그랬더니 ‘반납요?’ 하면서 물었다. 딱히 반납만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다시 손으로 책을 가리켰다. 그랬더니 다시 ‘반납요?’ 하며 물었다. 반납도 하고 기증도 하려했으니 굳이 따진다면 여러 대답을 하기 싫어 책을 손으로 가리켰던 것이다. 그 정도면 입구에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기를 바랐는데, 자기 책상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 기분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자 다른 남자 직원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화가 나서 ‘이 정도 하면 와서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였고, 가만히 서서 그냥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것은 좀 그렇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반납은 여기에 도서번호를 적으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도서번호가 없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냥 두었다. 이 책을 폐지로 팔아도 얼마는 받을 것인데, 차라리 버렸으면 버렸지 기증은 하지 않기로 순간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문을 나선 나는 다시 후회를 하고 있었다. 신간 5권이면 최소 5만원은 되는데, 아깝게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반납이면 거기에 있는 반납 장부에 기재하고, 책을 놓고 가면 되니 그렇게 하라고 말하려고 했을 것이다. 물어보나 마나 뻔하다.

나는 정작 퇴근시간이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공무원 퇴근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허둥댔던 것이 우스웠다. 오늘은 은행시간에 맞춰야 하니 일찍 나서야 하고, 내일은 공무원을 만나야 하니 일찍 나서야 하고, 모레는 집안 일이 있어 일찍 나서야 하고, 다음 날을 병원에 가야 하니 일찍 나서야 하고, 그러고 보니 도대체가 일할 시간이 넉넉하지가 않음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중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간다고 중간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칼출근을 하고 칼퇴근을 하면서 정년이 보장되었다가, 나중에 연금도 받는 그런 직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는 그냥 단순 사무에 속하면서 일의 양조차 적은데도, 급여는 대기업수준으로 맞춰달라거나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은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칼퇴근! 세상에는 칼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 그러니 이런 단어가 생겨났겠지. 나에게는 오늘이 그런 사람들을 확인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