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로 시작하는 설날아침
우리는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낸다. 예전에는 사당에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는데 매월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정월 초하루, 동지, 그리고 돌아가신 날 등에 지냈다. 그러다보면 매년 수 십여 회나 되는 제사가 있어 복잡하고 부담이 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보름에 지내는 제사를 간소화하여 술잔대신 찻잔을 올리는 방식으로 대신하면서 차례(茶禮)가 생겨났으나, 점차 확대되어 간소한 제사의 통칭으로 변한 것이라 추측해본다.
따라서 새해 첫날과 팔월 보름에 지내는 제사역시 간소화된 차례이지만, 워낙 많은 제사를 생략하였기에 제사를 지내는 날에 술을 올리는 풍습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차례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면 맞는 해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설날은 세배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풍속이 있었으니 기원을 담은 그림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이 그림은 한 해의 악귀를 쫒고 다복하며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래서 세화(歲畵)라하여 호랑이나 용, 학, 해태, 봉황, 사슴 등 십장생을 등장시켰고, 소생하는 의미의 매화나 동백과 변함없는 괴석, 수석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선녀가 포함되었다. 이때 민초들은 원래 그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니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담은 그림이면 족했던 것이다.
궁궐에서도 세화(歲畵)를 하사하였는데, 도화서직원 30명은 연간 20장씩의 세화를, 다음 발령을 기다리는 임시 도화서직원인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30명은 연간 30장씩의 세화를 그려야 했다. 이들 작품으로는 오봉산일월도, 십장생도, 해학반도를 비롯하여 미인도, 수렵도 등이 남아있다.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는 선녀, 수성, 직일신장, 금신장, 갑신장, 십장생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장군상은 악귀를 몰아내는 것으로 믿어 대문에 붙여 놓았는데 이를 특별히 문배(門排)라고 불렀다.
세화가 악귀를 쫒는다거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은 분명히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세화가 전문 부적(符籍)으로 변질되지 않고 생활 속의 풍속화(風俗畵)로 발전된 것은, 그 속에는 마냥 바라고 원하는 것보다도 우리의 생활상이 더 많이 녹아들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민속화에 십장생을 비롯하여 호랑이와 까치, 물고기, 그리고 우리 풍속인 씨름이나 그네타기, 윷놀이 등이 전해오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이런 생활풍습으로는 단오놀이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있다고 보면 되겠다.
입춘이 되면 입춘대길이나 건양다복이라는 문구를 써서 붙여놓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단오가 되면 부채를 선물하던 것이나, 동지에 팥죽을 끓이고 책력을 선물하던 것과도 같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니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들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현재까지 생활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하였다.
설날아침이 양력으로 1월1일이냐 아니면 음력으로 1월1일이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설날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예전처럼 모든 격식을 갖추자는 것도 아니다. 새해가 되면, 설날이 오면 지난해를 어떻게 보낼 것이며 오는 해를 어떻게 맞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해넘이 축제를 거창하게 하여 밤을 지세고 흥청망청하거나, 신년 해맞이 행사를 번듯하게 하여 특정지역에서 불야성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화원이 정성을 들여 1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듯이, 이 그림을 받는 사람이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듯이, 내가 그린 세화로 우리 식구가 다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새해맞이 행사로 충분할 것이다. 문배로 인하여 우리 집안이 1년내내 평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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