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과 읽는 다는 것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글을 쓰는 것도 재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이 가까이 있으면 읽어 가는 것만큼이나 자료를 찾는데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하여 미진한 부분을 찾아보고, 또 다른 사항을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묶어서 하나의 작은 글을 쓰곤 한다.
또 하나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알리기 위하여서다. 좀 어리석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 나의 존재를 알리고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어 알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냥 나를 알아주기는 쉽지 않으므로, 내가 남에게 알려질 만한 존재여야 한다는 조건이 앞선다.
이 조건이란 인생의 연륜이 있으면 가능할 것이나, 보통 사람들은 그냥 연륜만 있는 경우의 글은 무시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전공분야에 근무 하면서 업무의 효율화를 꾀하여 생산성을 높이거나, 물질적인 이문을 남기기 위한 방편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직접적인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을지 모르는, 그냥 순수 문학이거나 자신의 의견피력인 산문을 쓰기도 한다.
이 두 가지 글에 대하여 살펴보면 전자의 경우는 훌륭한 사람으로, 능률적인 사람으로 평가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현실도피적인 방법으로 치부하거나 경쟁에서 뒤진 낙오자들의 넋두리쯤으로 폄하하고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문명인들의 대체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순수문학은 없고 생활에 실전을 더한 이론서만 있다면 이 사회는 메마르고 고달픈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것에 대한 변명은 구차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성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이 경쟁위주의 삶이라면 아마 인생의 대부분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라는 목표아래 항상 경쟁만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남보다 앞서기 위하여 질투하고 비방하며 심지어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강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획일적이고 강제 주입식인 붕어빵 인생을 양산하다가 그 중 돌연변이가 생기면 그것을 하나의 개체로 인정하고, 그 종의 장점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려 할 것이다. 그러면 교양은 갈수록 피폐해져서 나중에는 그 필요성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아마 그때쯤 되면 인간들 사이에서 용호상박이 벌어지는 그런 세상이 온다고 보아도 틀림없다.
그러기에 이 사회는 전공과 교양이 항상 적절한 비율을 갖추어야만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지구상의 인간세상도 가능한 긴 세월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경쟁을 앞세우는 전공 외에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교양이 필요한 것은 확실하고, 이 교양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러면 교양은 무엇이고, 문학은 무엇일까. 사실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정도의 무지함으로 답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면 인간의 저 밑바닥에 깔린 순진무구함이 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그러다보면 혹시 예술과 같은 교양이 전달되고, 우리 삶의 윤활제와 같은 교양이 다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한편 예술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쉬운 일은 다만 일상의 일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내가 한 이 일이 예술이 되기를 원한다면, 여기에 휠씬 많은 노력을 덧붙여야 한다.
따라서 보통의 우리들이 한 일이 모두 예술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여도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열정과 노력을 투자하여야 한다. 그러나 범부들은 그런 열정을 쏟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록 예술가는 아니라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진실되게 표현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것으로도 예술이 가지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져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이것이야 말로 졸작도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게 하는 그런 연금술사가 되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훌륭한 예술작품을 선보이기 위함보다도, 나의 생각을 보여주고 싶은 순진한 마음에서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나는 아직 예술작품을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러기에 남의 훌륭한 예술작품을 논할 처지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보다는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에서라도 만족을 얻어야 할 일이다. 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은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새로운 것을 써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을 써서 세상을 밝게 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것들을 끄집어내서 알려주기 위함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하여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보다.
뿐만 아니라 글쓰기는 문자가 가지는 아주 중요한 목적의 하나인 기록의 의미를 실천하는 것이다. 지금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아주 커다란 일일지라도, 조금만 지나게 되면 모두 잊혀지고 전혀 알지 못하는 생소한 사건으로 다가 오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다. 때문에 기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기자나 편집자 또는 구상작가 등 어느 특정분야 종사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인생의 선열로서 후세에 대한 국민 모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렇다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작자의 마음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자는 글자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우리가 글을 읽다보면 쓰여 진 문장은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작자는 슬픔을 대변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이렇게 눈으로 보이는 글과 표현하고자 하는 글은 다른 면을 가진 경우가 많이 있다. 따라서 이미 쓰여 진 글을 읽는다는 것도 새로운 글을 쓴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수필가 /필명: 한 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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