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2013년의 입추인 8월 7일은 대단히 더운 날이었다. 기상관측 사상 몇 십 년만의 기온이라고 할 정도로 무더웠다. 입추는 글자 그대로 가을이 온다는 뜻이라, 어떤 의미에서든지 가을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남부지방에서 그것도 전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낮의 기온이 36.5℃였다고 하니 실로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입추를 맞아 신문사에 보낼 칼럼을 써야 될지 말아야 될지 망설이는 사이에 입추가 지나갔다. 요즘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지면을 통해 입추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한 정보가 흘러넘쳐 주체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참에 굳이 입추가 어떻고 가을이 어떻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쑥스럽게 느껴졌었다. 이러다가는 우리의 24절기가 남의 나라 어느 시골에서 일어난 동네 개싸움정도의 관심 밖 세상사가 되지나 않을지 걱정도 든다.
그러면 입추가 가을이라는 뜻은 맞기는 한 것일까. 입추는 가을에 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입추는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을에 한 발이라도 들었으면 누가 뭐래도 바로 가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입추는 가을이다. 그런데 입추가 양력 8월 초에 들어있어 완벽한 더위의 절정인데 왜 가을이라고 하였을까. 그것은 생각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번에 보았던 하지는 밤의 길이에 비해 낮의 길이가 가장 긴 절기였다. 그러니 북반구에 사는 우리로서는 태양의 위치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날이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이날이 1년 중 가장 더운 날이 되어야 맞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지에 가장 덥지 않은 것을 따지지 않았듯이 입추 역시 가을 날씨가 아닌 것에 따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입추에 가져야 할 첫 번째 상식이다.
다음으로, 가을에 떠오르는 것을 들자면 맑고 푸른 하늘이다. 그리고 들판에 황금물결이 출렁대며 길가에서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모습도 연상된다. 그런데 이런 가을의 전령사가 반드시 9월이나 10월의 가을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8월이면 벌써 벼 이삭이 꽃을 피우고 익어가며, 코스모스 역시 부지런한 녀석들이 8월도 늦다하며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린다. 한편 가을 하늘을 누비고 다니는 고추잠자리는 8월 여름방학의 곤충채집 단골 메뉴 1번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태음력과 태양력을 혼용한 태음태양력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24절기는 태양을 중심으로 쪼개어 놓은 특정 일자에 속한다. 그러나 거기에 붙인 이름은 우리의 삶과 지혜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입추는 가을이 온다는 뜻이며, 가을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한편 하지는 여름 즉 태양의 절정이라는 뜻이며, 입춘은 곧 봄이 온다는 뜻이다.
이러한 해석은 24절기와 세시풍속에서 차이가 나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름철 가장 더운 때를 일러 삼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때의 삼복은 24절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굳이 그 이유를 들자면 삼복은 우리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가장 더운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오와 칠석 그리고 추석 등이 24절기에 들어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이런 날을 일러 민족 고유의 풍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풍속일은 태음태양력 중에서 달을 중심으로 구분하는 특정 날에 속하는 것이 기본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태양과 달, 그리고 직접적으로 느끼는 계절과 다가올 계절에 대한 예고 등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처럼 편리한 인터넷이 없었어도, 하루에 천리만리를 갈 수 있는 고속열차가 없었어도, 지구촌을 실시간으로 통화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없었어도 선조들은 이미 자연과 삶의 고리를 늦췄다가 당기는 조절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시 말하면 어느 한 가지만으로 결정할 수 없을 때, 둘 다 존중하는 삶의 지혜를 보여준 선조들이다. 그것도 벌써 1000년도 넘는 그 이전, 우리가 우매하고 어리석었다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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