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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원장, 그는 왜 열을 내고 있는가

꿈꾸는 세상살이 2007. 2. 28. 21:28
 

문화원장, 그는 왜 열을 내고 있는가.


문화원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후보로 나서서 선거연설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선거에 나서서 연설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문화원장은 왜 목에 힘을 주고 얼굴에 열을 뿜으면서 말을 하는 것일까. 결론은 역사를 바로 알고 문화를 사랑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의 문화를 발굴하고 잘 보존하여 물려주자는 것이다. 거기에는 지위의 고하가 필요 없고, 재물의 과다가 필요 없다고 설명한다. 다만 필요한 것이라면 국민 개인이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맡은바 역할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익산은 경주, 공주, 부여와 더불어 역사 고도(古都)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다른 도시가 역사적 발굴과 보전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데 반해 전혀 움직임이 없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 다른 도시는 역사 고도로 지정되기 전에도 집중투자와 테마 관광을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익산은 고도지정 이전이나 이후에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고 하더니 형식적으로 역사고도라 지정은 하여 주었나보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행정권, 심지어 문화권에서도 더 이상 이렇다할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판단하여 그렇게 지정될 도시였다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음이 확실하건만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들이 국회 문광위원장을 내리 세 분이나 맡으셨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유래가 없는 하늘이 내리신 문화도시임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이분들은 모두 상대방을 배려하는 정치를 하셨다. 자기 출신 지역보다는 타 지역을 우선 생각하고 지원하는 정치를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국토의 균형발전이나 문화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는 형평성에 맞지 않으며, 국가 예산의 비효율적인 사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권이 그러하면 행정권은 어떠한가. 지자제가 실시 된 이후 정책이 단절되기 일쑤며, 행정의 공백과 중복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마당에 쉽게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이익을 창출해주지 않는 역사와 문화는 항상 뒷전 일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고 하면서도, 척척 가지를 꺾어 꽂아두는 단발식 정책이 많기도 하다. 별도의 물을 주지 않아도 한 여름만 견뎌주면 고맙고, 자체의 수분으로 한두 개의 잎만 나와도 만사형통이다. 시커먼 간자장을 먹고 싶은 사람들은 희멀건 우동이 입맛에 맞지 않는 법이다.

배고픈 사람들은 찬물로도 위아래를 따지지만, 배부른 사람들은 값비싼 피자를 가지고도 그냥 대칭으로 자른다. 거기에 위아래는 물론이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없다. 다만 있어야하는 것은 동등하고 획일적인 분배뿐이다.

 

나는 그 말을 풀어 되씹어본다. 문화와 역사라는 것은 배부르다고 하면서도 그냥 골고루 나누어 이름을 지어야하는 한 끼 식사가 아니다. 편중된 섭취로 유난히 머리가 크다든지 한쪽 팔이 길다든지 하는 기형을 유발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대대손손 이어져갈 혼과 양심이 되는 것이다. 내가 우리 문화와 역사를 보전하지 않을 때 우리는 뿌리 없는 민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문화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물려받지 못한 후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돌연변이 객체에 지나지 않음이 그것이다.

 

문화원장, 그가 왜 열을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작 사회의 지도층에 계신 분들은 가만히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