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자를 썼던 날들
내가 처음 모자를 쓴 것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모자를 썼던 것이 확실하다. 그때는 검정색의 두꺼운 천으로 만든 모자였었다. 이 모자를 더우나 추우나 시도 때도 없이 쓰고 또 썼었다 .
그러다가 1977년 드디어 네모진 모자를 써 보았다. 그때는 사각모자를 쓰는 기분이 어떤지 별 관심도 없었다. 어서 빨리 식이 끝나면 그냥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했었다. 당시 나는 뭔가에 쫒기는 조급증이 있었던 것 같다. 헤어지는 친구들과 좀더 뜻있는 시간을 만들지 못했던 일들이 후회가 되기도 했었다.
다음해 1978년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모자를 쓰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정모라고 불러주었다. 정모는 정식정복과 약식정복을 입었을 경우에만 쓰도록 되어있었다. 그래서 당일 행사가 끝나고 나서는 거의 쓰지 않는 장식용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검정에 약간의 국방색 빛이 섞여있는 챙 달린 모자였다. 태극기도 그려져 있는 문양이 폼나는 모자였었다.
그 후 3년간은 국방색 모자를 썼었다. 이때는 얇고 간편하여 손으로 쥐고 다닐 수도 있는 모자였다. 때로는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기도 하는 편리성 위주로 만든 것이었다. 이 모자는 태양의 자외선도 막아주고, 비가 오면 시야를 확보해 주기도 하였다. 시선을 집중할 때는 주위의 산만함을 방지해주는 이점도 있었다.
이후로는 모자와 나의 인연이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의 끝은 없었다. 다만 잠시 시간을 필요로 할뿐이었다.
2000년 여름, 다시 사각모자를 썼다. 이때는 정규과정이긴 하였지만 학위와는 관계가 없는 특별과정의 수료식이었다. 그래도 수료생 전원이 사각모를 쓰고 행사를 치렀다. 행사는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식전행사로 국악연주와 민요, 그리고 현악 4중주, 사물놀이까지 총동원하였었다. 복식도 박사학위용 가운과 박사모를 선택하였다. 본 행사는 물론 식후행사까지 그야말로 준비된 행사였었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2006년, 이제는 아들이 졸업을 하게 되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 축하해주고 격려해 주었다.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나도 모자를 써 보았다. 졸업은 아들이 하는데 어찌하여 부모들이 모자를 쓰는 것일까. 자식들 뒷바라지에 대한 위로일까, 아니면 졸업의 영광을 같이 하자는 배려일까.
유학에 의하면 사람은 죽어서도 배워야 한다고 현고학생 뭐라고 하던데 나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나보다.
2007년 다시 사각모를 쓸 기회가 생겼다. 이날은 정식 학위수여식으로 아들이나 딸에게 보내는 지원자의 위치가 아니라,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축하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찍어 달라고 말하는 입장에 있었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모자를 써 왔기에 이번 모자는 쓰지 않으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모자를 썼던 경험은 나의 경험일 뿐이며, 가족이나 특히 자식들의 경험은 아니라는 결론을 낸 후 졸업식에 참석하였다.
내가 사각모를 썼다고 특별히 달라질게 없겠으나 자식들에게 뭔가 교훈을 주고 싶었다. 특히 대학 졸업반인 딸아이에게는 좋은 스승이었기를 바라면서 모자에 대한 반응을 살펴본다. 이것저것 참견하는 모습이 제 딴에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럼 내 작전은 성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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