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나의 주변 이야기

개장신고

꿈꾸는 세상살이 2007. 3. 14. 18:15

 

개장신고

 

분묘를 파헤치려니 개장신고를 하여야 한단다. 開葬은 글자 그대로 장사지낸 것을 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묘는 망자의 거처라서 겨우 한 평이라고 하지만 함부로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두고 있다.

그래서 개장은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후 열어야 된다. 그 묘가 나의 조상이나 가족일 경우 물리적인 관리는 내가 하지만, 행정상의 관리는 어차피 동사무소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묘가 있는 주소지의 관할 동사무소에 신고를 하여야 한다. 개장신고에 필요한 서류로는 우선 개장을 할 묘의 사진 한 장이 필요하고, 그 묘가 누구의 묘인지를 확인하는 제적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이미 돌아가신 분은 호적에서 지웠다는 의미의 除籍證明書인데, 우리의 주민등록등본이나 호적등본과 같은 의미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남의 묘를 파기 위하여 임의로 제적증명서와 사진을 첨부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고자가 가족임을 확인하는 서류가 있어야 한다. 이 경우 가까운 직계가족은 한 장의 제적증명서에 나타나지만, 여러 대를 거친 경우는 다른 제적증명서나 호적 등본 등으로 확인하면 된다. 구성원이 정식으로 처리하면 개장이 되고 임의로 남의 묘를 처리하면 도굴이 되니, 후자는 법으로 금하고 있는 것이다.  

신고자는 개장신고를 하여 신고필증을 교부받으면 개장을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다른 곳으로 이장을 하든지, 아니면 화장을 하든지 그것은 연고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개장신고를 할 때 벌써 이장이나 화장을 결정하여 신고하여야 한다.

 

나는 오늘 두 분의 묘를 개장하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동시에 화장을 한 것이다. 서류상으로야 내가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일을 하시는 것은 마을 어르신들이다. 그러니 그 분들의 요구에 따라 준비를 하는데 이른바 손 없는 날도 잡고, 산에서 간단한 예도 치렀다. 우리야 기독교를 믿지만 산일을 하시는 분의 행동반경까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산신제 지내는 모습.

개장을 해보니 그 형체는 온데간데없고 유골도 많지 않았다. 백골이 진토가 된다더니 그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무 관은 전혀 흔적이 없고, 그 공간마저도 모두 흙으로 메워져 있었다. 어쩌다 남아있는 유골도 흙 속에 묻혀있어 하나하나 캐어야 하였다. 오래된 분묘는 대부분 그러하단다.

  개장1.

 개장2.

  완전진토된 모습.

  약간의 유골 발견.

육탈이 덜 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이 좋은지, 아니면 모두 진토가 되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 좋은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자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좋다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후자가 더 좋은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1939년, 1956년에 매장을 하였으니 오래된 묘들에 속했다. 곁에는 큰 나무도 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암석도 있는데 나무뿌리나 암석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는 물이 흘러가거나, 아예 물에 잠겨있는 경우와 쥐구멍이나 뱀구멍이 있다는 말도 들었는데 그런 것들이 없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속 깊숙이 파내려가도 흙이 보슬보슬하였다. 너무 메말라 굳어있거나 너무 습하여 젖어있지 않은 것만 해도 좋다고 생각되었다.

만약 위에 열거한 안 좋은 것들이 있었다면 화장하기를 더더욱 잘했다고 하지 않았을까. 어머니께서는 묘자리가 좋으니 손대지 말라고 하셨지만, 말도 못한 채 마음속으로 염려하고 우려하던 것을 파헤쳐 보니 속이 후련해졌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을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은 좋은지 나쁜지조차 알 수 없다면 차라리 없애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장묘문화에서 화장을 택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