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나의 주변 이야기

100살 잔치는 시작되었다 .

꿈꾸는 세상살이 2007. 4. 11. 21:12
 

100살 잔치는 시작되었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부친의 팔순잔치를 한다고 한다. 날짜는 2007년 4월 22일로 잡았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서 나이 70이든 80이든 소문내고 하는 잔치는 줄어든 대신 친지끼리 모여서 가족식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좀 서운하다 싶으면 여행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간소화는 거스릴 수 없는 대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더니만 진짜로 가까운 주위에서 여든 객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 집은 날을 잡아 잔치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 잔치를 하는 것은 팔순을 기념하는 것보다는 더 큰 다른 이유가 있다. 할머니께서 올해 100세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겸사겸사해서 잔치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정도다. 내친김에 며느리에게 효부상이 주어진단다. 70여 성상동안 동고동락한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면 보답일까.

내 이제 장성하여 나이 50이 넘었지만 그분들을 생각하니 다시 작아만 진다. 내가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에 온통 할아버지뿐이었다. 내 눈에 비친 50세 된 어른들은 모두 할아버지였으니 나이가 조금 많고 적을 뿐 그냥 할아버지로 통하는 분들이었다. 그 당시 연세가 지긋하신 부모님은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더 이상 나이도 먹지 않는 그냥 그렇게 정해진 분들이었다.

어린 자식들에게 부모는 항상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세파에 맞서 길을 열어주는 배와도 같은 존재였다. 사실은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파도를 만나 무섭고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겉보기에는 천년을 버텨온 거목과도 같았다.

그리고도 4,50년이 흘렀다. 이제 내가 그 당시의 어른이 되었다. 내가 불렀던 할아버지라는 단어는 영 어울리지 않는 단어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할일도 많고 해야 할일도 많은데 할아버지가 되어 손을 놓아야 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문명의 편리함이 인간의 기계적 수명을 자꾸만 늘려가고 있는데, 내가 어디까지 편승하여야 할지가 문제로 떠오른다.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정이 메마르고 형식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나만은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그냥 오래 사는 것보다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가 더 큰 문제다.

요즘 사회 환경 세태로 보아 예전의 대가족 제도에서 보여주던 가족애를 더 이상 요구하기가 어렵다. 직접경험에 의한 기술을 토대로 국한된 지역에서 자급자족하던 시대에 가졌던 문화가, 지금처럼 다양하게 세분화되고 분업화된 지구촌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내가 몇 살까지나 살았으면 좋겠느냐고 과년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처음 대답은 그냥 이렇게 끝까지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입장에 따른 대화용 멘트임을 인정하고 다시 물어보았다. 이번에는 자기가 65세가 될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역으로 계산하면 내 나이가 95세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40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걱정이 앞선다. 그럼 내가 40년이나 더 일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거리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하는 걱정이다.

아무튼 일에 대한 걱정이냐 일거리에 대한 걱정이냐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우선은 95세까지는 결재를 받은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내 힘으로 나머지 다섯 살만 보태면 100살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때 나도 커다란 잔치 하나쯤은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나에게도 100살 잔치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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