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잡다한 무엇들

참을 수 없는 유혹 '설탕'

꿈꾸는 세상살이 2007. 4. 7. 17:38

참을 수 없는 유혹은 참으로 참을 수가 없다. 어쩌면 유혹은 그래서 유혹인가 보다.

우리가 흔히 유혹을 물리치기로 말하면 먼저 주색잡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기호식품과 취미생활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혹들은 어차피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내용이라고 인정하고 나서도 나에게는 또 한가지 주체할 수 없는 유혹이 있다. 

 

내가 겪고있는 유혹은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식욕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보다 많은 양을 먹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종류의 음식들을 언제든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먹는데에 문제가 있다. 기름진 음식이든 거친 음식이든, 뜨거운 음식이든 차가운 음식이든, 튀긴 음식이나 찐 음식이나, 잘 익은 음식이나 덜 익은 음식이나를 가리지 않고 먹는 식성은 영양의 과소와 부피의 과소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중에도 오늘은 단 한가지 음식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이른바 설탕이다. 주변의 보통 사람들은 설탕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요사이 우리 식생활에 깊숙히 관여한 탓에 오히려 설탕이 없으면 음식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식품군이 되어버렸다. 나도 설탕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설탕이 들어간 음식은 먹기에 부드럽고 그 달콤한 유혹을 거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집 식단에서는 설탕을 넣지 않고 조리하기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남들이 다 넣어야 한다고 하는 김장김치와 가끔씩 담그는 겉절이에도 설탕을 넣지 않은지 오래다. 나물을 버무리거나 무칠때에도 설탕은 넣지 않는다. 토마토와 딸기를 설탕에 찍어먹는 것은 잊은지 오래다. 딴에는 바야흐로 무설탕시대에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그래서 떡을 할 때라든지 특별히 맛을  내야 할 때에는 설탕대신 슈가를 넣도록 하고 있다.

 

갑자기 손님이 와서 우리 음식을 먹어야 되는 경우는 집안이 좀 바빠진다. 반찬 중에는 저장해 있던 것을 새로 꺼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설탕을 약간 넣어 맛을 조절하는 추가 조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때도 백설탕 대신 황설탕을 넣고 가능하면 진한 흑설탕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상대방의 기호에 따라 눈치를 보아가면서 가감하여야 하는 고충도 따른다.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하지만 세상사가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밖에 나가면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설탕을 접하고 있다. 가장 손쉽게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셔도 설탕이 추가되고, 빵을 먹으면 설탕 덩어리요, 외식을 하면 그야말로 한 달을 참았다가 한 끼에 설탕을 뒤집어쓰는 결과가 된다. 이럴땐 눈물겹게 노력한 것이 한낱 수포가 되고만다.

이렇게 금설탕을 지켜오면서 온 가족이 즐겨먹던 과자를 줄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뚝 끊어 안먹다시피하고 있다. 설탕과 버터를 빼놓고는 만들 수도 없는 쿠키나 빵은 아예 집에서 만드는 것도 금하고 있다.

그 좋던 식욕에서 설탕과 밀가루를 멀리하라는 아내의 특명이 내려졌다. 거기에는 청량음료도 포함되어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외식때 술대신 음료수를 마시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이제는 그것도 절반으로 줄여 마시고 있다. 이처럼 나도 그 명령을 거역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나는 설탕을 멀리하려고 무지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설탕을 멀리하여햐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는 보아야겠다.  그럼 차라리 처음부터 설탕을 만들지나 말지, 왜 달콤하게 만들어 놓고는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사람이 처음 설탕을 접했을 때는 기원전 2000년 경으로 천연재료인 사탕수수를 만났었다. 이때의 사탕수수는 아주 많은 수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적당한 여러 영양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제된 설탕이 되면서는 달콤한 유혹만 남아 단맛 일색이 되었다. 따라서 정제된 설탕은 주성분이 수크로오스이며, 우리 몸에 들어와서는 과당과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영양소는 없으면서도 고칼로리의 기형적인 음식이 된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 몸에 들어온 설탕은 영양소가 없으니, 위에서는 소화작용을 할 것도 없이 바로 장으로가서 혈액에 녹아들어 혈당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몸의 신진대사에 이상이 오고, 각종 분비물인 호르몬의 균형을 깬다. 또 이 설탕이 우리 몸에서는 편중된 영양소로 블균형을 띠게 되고, 이에 시달린 우리 몸은 이 성분을 몰아내기 위하여 아주 많은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다양한 비타민이나 미네랄이 과도하게 소비되어 이상을 초래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설탕은 정제된 음식이므로 기계적으로 만든 음식인데 우리 몸에 도움이 안되는 성분만 있다는 결론이다.

 

설탕은 먹는 만큼 우리 몸의 불균형을 초래한다니 좀 괘씸한 생각이 든다. 설탕은 분해되면서 특히  비타민B1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평소 적당량을 간직하고 있던 우리 몸은 이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필요 없으면 그냥 배설되면 될 것을 왜 꼭 있어야 할 성분을 앞세워  자신을 포장하는 것일까. 거기다가 과다한 설탕의 섭취는 지방질로 변하다가 곧 비만의 주범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이쯤되면 설탕은 단맛을 내는 요소로서 가지고 있는 효과보다는 해로운 작용을 한다는 오명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식전에 설탕을 복용하면 순간적으로 혈당치를 높여주어 피로가 풀린 듯하며, 혈기 왕성한 것같은 상태로 된다. 이것은 바로 밥맛을 없애는 작용을 하며 다음 활동에 커다란 지장을 주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좋은 것보다 좋지 못한 것이 더 많은데도 우리가 설탕을 멀리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달콤한 유혹이라는 단어로 풀이하고 싶다. 자신을 억제하고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자신도 모르게 망하게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수렁에 빠진 사람이 정신없이 허우적대면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듯이,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편한 것만 누리다가는 결국 자신을 스스로 망치게 된다는 것이니 참으로 무서운 진리인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도 고통의 쓴 맛을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처지도 이해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수도 있다고 본다면 억지일까? 그러나 설탕을 멀리하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나를 배려하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그것도 바로 남을 배려하는 일이된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