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늦은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예상 강우량은 많지는 않았지만 비를 맞아서 좋을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침 하늘은 구름이 조금 끼어 있을 뿐 아직은 비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비를 맞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미리 우산을 챙겨 놓았어야 하는데 그만 깜빡 잊고 만 것입니다. 혹시나 저녁에 먹구름이 밀려오고 비가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가던 길을 되돌려서 우산을 챙겨오기도 망설여집니다. 차를 바로 돌린다고 하여도 그만큼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왕복 연료비도 적지 않습니다. 꾸물대다가는 회사에 지각을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산은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물건도 아닌데 차라리 하나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침 일찍부터 우산을 파는 곳은 없었습니다. 길가의 가게마다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에 도착하여서도 걱정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하나 걱정하는 빛이 없이 밝고 환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다가, 다 늦은 오후에 그것도 조금 온다하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비가 오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차에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지, 아니면 집에서 마중 나올 사람이 있는지, 그도 저도 아니면 종이상자라도 뒤집어쓰려는 심산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어두워집니다. 그래 큰 일이구나, 벌써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면 도대체 얼마나 오려고 저러는지 걱정이 됩니다. 굵은 빗방울이 막 떨어질 듯 찌푸린 하늘입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고 사방이 후텁지근하여졌습니다. 온 몸이 근질근질해지고 체온이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짜증이 납니다.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낼 뿐입니다. 어제 마감 뉴스의 일기예보를 보고도 우산을 챙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저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터벅터벅 돌아 갈 것을 생각하니 내가 처량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비가 와서 돌아갈 때 비를 맞을까 걱정이라며 누구랑 상의할 수도 없습니다. 일손도 잡히지 않고 뒤숭숭한 가운데 발걸음은 자판기 앞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드러내놓고 내색도 못하면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봅니다.
긴 한숨을 쉬면서 창밖을 보니 비구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니 저럴 수도 있구나 생각하는데 거친 바람은 장막을 일거에 거둬가고 있었습니다. 반대쪽으로는 벌써 하얀 구름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하하 그럼 그렇지 내가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비가 오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표정에 변화가 없습니다. 그저 나 혼자서만 좋아라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우산을 가져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었을 뿐입니다. 비는 늦은 오후에 온다고 하였는데도 이른 아침부터 걱정을 하였습니다. 우산을 가지러 집에 돌아가지도 않았고 우산을 새로 사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비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우산이 없으면 비를 맞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책없이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쓸데없는 걱정만 하였습니다. 자연의 움직임을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것은 정말 기우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고 나를 흉볼 것 같았는데 사실 나 하나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사람이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채 비를 맞는 것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비 한 번 맞았다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더구나 미친 사람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거기에는 그냥 내 옷이 젖어 말려야 하는 과정이 필요할 뿐입니다. 어쩌다 심하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들 중에 섞인 평범한 한 사람일 뿐입니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충일과 모내기 (0) | 2007.06.17 |
---|---|
공무원이 부럽지 않은 직장을 위하여 (0) | 2007.05.31 |
탱자! 꽃이 피다 (0) | 2007.05.04 |
상대를 멀리하는 대화법 10가지 (0) | 2007.05.01 |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것들 (0) | 2007.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