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나의 주변 이야기

영악해진 소비자! 나도 보상좀 받아볼까?

꿈꾸는 세상살이 2007. 5. 29. 15:53

 

 

 

 

 

 

영악해진 소비자! 나도 보상 좀 받아볼까?

 

요즘 소비자들은 각종 매체에 의해 많은 정보를 얻고, 온갖 자료를 바탕으로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판매자와 동일한 수준의 지식을 자랑하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전문가 수준의 박식함을 보여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판매자나 제조자와 맞서 품질을 논하고 더 나아가 소비자의 권리를 찾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소비자가 제품의 품질이나 제조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을 때는 반환을 요구하거나 다른 제품으로 교환을 원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 반환이든 교체든 소비자가 요구하는 대로 해주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일부 얌체들은 판매자나 제조자의 잘못이 아닌 자신의 과실인 것조차도 문제 삼고 나서는 예도 허다하다.

 

어떤 고객은 수박을 사서 다 먹고 난 후 껍질을 들고 와서, 수박에 문제가 있었다며 환불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초여름에는 수박이 덜 익어서 배탈이 났다고 하고, 한여름에는 너무 익어서 식중독에 걸렸다고 하는 예와 같다. 생수나 분유, 음료 등에 자신이 집어넣은 오물을 가지고 문제 삼은 예도 있었고, 새로 산 옷을 입고 여행까지 다녀 온 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급식당에서 음식을 다 먹고 난 후 미리 준비한 파리를 넣고 시비를 걸어 음식 값을 지불하지 않는 것도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화점에서 고객끼리 싸웠는데 백화점 측이 수준 낮은 고객을 입장시켜서 싸우게 되었으니 위로금을 내 놓으라고 한 것은 가히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소비자는 이처럼 많은 요구를 하고, 고객에게는 한없이 보상을 해 주어야 시대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제조사나 판매자가 고객만족 또는 고객감동 경영을 펼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거기다가 선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의 피해가 뒤따라도 상관없다는 억지가 등장한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이나 매스컴을 통하여 자신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업들이, 쉽게 합의를 하고 요구대로 보상해 줄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용한 비뚤어진 양심의 산물이다.

 

우리도 전에 수박을 통째로 교환한 경험이 있다. 잘 익은 맛있는 수박인줄 알았는데 심지가 곧은 이른바 박수박이었던 때문이었다. 이때는 수박의 심한 부분을 잘라서 지퍼 팩에 담아 증거로 제시하였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작년에도 맛있게 먹었던 마늘장아찌를 담기 위하여 올해는 통마늘을 세 접이나 샀다. 저녁내 마늘을 까고, 씻고 부산을 떨었다. 먹을 때는 얼마 되지 않아 보이더니만, 준비하는 데는 일손이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수돗물을 받고 식초를 넣은 후 펄펄 끓였다. 찜통에 가득 든 물을 식힌 후, 잘 씻은 마늘을 미리 넣고 준비한 유리병에 부었다. 커다란 병에 가득한 마늘을 보니 기분도 듬직하다. 며칠 있다가 다시 물을 따라 끓이고 식히기를 반복하여야 한다. 최소 세 번은 끓여 부어야 제 맛을 내는 마늘장아찌가 될 것이다.

 

다음날 아침 마늘 병을 옮기려는데 마늘 색이 변해있었다. 예전에 저장마늘은 생육을 멈추게 하기 위하여 약품처리를 한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말 저장 마늘은 싹이 나지 않는 것도 확인하였었다. 이번 마늘은 저장 마늘도 아닌데 벌써 약품처리를 하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한다. 우리의 만능 해결사 인터넷에 들어가서 내용을 검색해보니, 마늘색이 푸르게 변하는 것은 약품 처리한 결과인데 먹어도 인체에 해는 없다고 한다. 그래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몇 달을 저장할 것도 아닌데, 요사이 유통기한을 지키지 못하여 약품 처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 번 더 속은 기분이다. 푸른색이 도는 마늘을 골라 지퍼 팩에 담았다. 여차하면 가지고 가서 따질 요량이다. 물러 주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미리 얘기는 해 놓아야 다음에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구입할 물건들도 적어보았다. 오이, 콩나물, 계란, 김 등등...

 

5일장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시장바구니에 가득하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면서 끌고 다닌 시장바구니다. 빈 몸으로도 다니기 복잡한 장인데 물건을 잔뜩 싣고 부딪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집에 돌아와 물건을 끄집어내면서 생각해보니, 마늘을 보여주고 혼을 냈어야 하는데 깜빡 잊었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다시 시장에 갈 수도 없고 난감하다.

다음에 가서 따지기로 하고 지퍼 팩을 찾는데 어디에도 없었다. 그 많은 물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시 들추어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시장에서 잃어버렸는지 몰라 찾기를 포기하고 싱크대에서 손이나 씻으려는데, 유리병 옆에 비닐봉지가 놓여있었다. 누가 벌써 갖다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음날 친정에 가서 하소연을 하였다. 색이 변한 마늘을 봉지에 담아놓고 깜빡하는 바람에 따지지 못했다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응원군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머님 하시는 말씀이 그것은 약품 처리한 결과가 아니란다. 저장 마늘을 파는 장사꾼 얘기를 들어보아도 그렇고, 인터넷에 쓰여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고 설명해도 사실은 그런 게 아니란다.

 

어머니께서는 70이 넘은 지금도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으신다. 어쩌면 농사 경험이 많아서 그런 것쯤은 다 아실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힘들고 노력에 비해 수확이 적지만 무공해 농산물을 먹고 싶어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특히 마늘이나 고추, 무와 배추 등 양념용 재료는 전혀 농약을 쓰지 않는 무공해로 짓는다. 그런 어머니께서 자신이 농사지은 마늘로 장아찌를 담아보니 푸르게 변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얌전한 마늘이 푸르게 변한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어머님 말씀을 믿지 않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다 믿을 수도 없었다. 어머님은 농약을 하지 않았어도, 그 마늘의 조상께서는 농약을 많이 잡수신 결과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봉지에 담아놓은 마늘도 잊어먹고 가져가지 않은 것은, 어쩌면 어머님 말씀을 듣기위하여 그랬다고 위로해본다.

 

그날 사전의 철저한 준비성과 빈틈없는 실천으로 마늘 장수와 싸울 수도 있었던 것을 막아 준 것은 깜빡하는 작은 실수였다. 그렇게 탓하던 건망증도 살다보니 내 편이 되어 줄 때가 있어 웃음이 나온다. 얄팍한 지식으로 모든 것을 덮어 버리듯 행동하는 것은 역시 옳은 일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