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나의 주변 이야기

친일파와 애국자! 나는 그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꿈꾸는 세상살이 2007. 6. 10. 22:03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모 국회의원을 만났다. 물론 일대일 면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 30여 명이라는 많지 않은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분께서는 리더는 모름지기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과 조직원을 위하여 사생결단의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할 때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명예를 버리고 소속과 소속원들을 위할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로서의 역할이라고도 하였다. 듣고보니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면이 있었다.

 

얼마 전 이순신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가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거기에서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명예와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국가와 국민, 자신이 속해있는 해군 장병들의 안위를 위해 백의종군하는 모습도 불사하였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리더의 덕목인가 싶기도 하다.

 

오늘 저녁 어머니를 뵙고 왔다. 옆집에 사는 공군 하사관이 오늘 결혼을 하였고, 그 집에서 떡을 좀 가져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장교로 근무중인 당신의 손자 걱정이 시작되었다. 밥이나 제대로 먹고 있는지, 부대원들을 잘 지도하고 다스리기는 하는지 등 군대도 안가신 분이 여러모로 걱정이 끝이 없으시다.

 

말씀끝에 지나간 얘기가 나왔다. 외삼촌께서 일제시대에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셨다고 한다. 어릴 적에 사진을 모아놓은 액자 속에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쓴 사진이 있었는데, 누군지 물어보면 그냥 삼촌이었다고 만 들었었다. 그런데 전사를 하였다고 하셨었다. 우리는 아마도 그래서 아버지 형제들이 없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지낸 어린 시절이었다.

 

그런데 오늘 듣고 보니 그 분이 삼촌이 아닌 외삼촌이었다는 결론이 섰다. 그런데 그 분의 성함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군에 입대를 하였는지, 어떻게 해서 장교에까지 올라갔는지 알 수가 없다. 어머니께서는 연세도 팔순이 되셨고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두운 등록 장애인이시기 때문에 더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더구나 생소하기만 한 계급은 무엇이었는지 등 자세한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긴 더 알아서 어디에 쓸데라도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생존하지도 않는 분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사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외삼촌이 해방이 되고 국군의 장교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추정이 된다. 한국전쟁이 나고 국군이 후퇴를 하면서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였을때 전사를 하였다고 하신다. 폭파가 된 줄도 모르고 어서 건너야 한다는 일념으로 짚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 그대로 물 속으로 수장되고 말았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당시 긴박하던 상황에 도보도 아니고, 트럭도 아닌 짚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면 그래도 제법 높은 계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중의 후퇴는 적의 탱크와 장비 등 무기의 열세에서 밀리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작전에서 빚어진 당연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한강교 폭파 작전에서 보듯이 국가의 리더는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추고, 군의 리더는 통신수단이 없이 직접 뛰어가서 전달하고, 차량이 이동하여 확인하는 정도로 우왕좌왕하다가 넘겨준 서울이었다고 생각하니 리더십의 중요성이 더욱 돋보이는 부분이다.

 

외삼촌이 일본군 장교였다니 나는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하여야 할까, 아니면 국군의 고급장교였으니 애국자의 후손이라고 하여야 할까. 이것만 놓고보면 어느 편이든 확실하게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외삼촌은 따지고보면 혈연관계에서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분이시다. 그러니 처음부터 이런 질문은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이다.

 

문제는 친일파라는 단어가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행동한 것에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피치못할 사정에 의해 끌려가다시피 한 것에 대해서도 친일파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친일을 한 대가가 엄청나게 커서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거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면 그것도 친일이라는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내 나름의 기준을 세워본다.

 

마을에 내려 온 인민군들의 총칼이 무서워서 밤에는 어쩔 수 없이 북한군의 앞잡이가 되고, 낮에는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국민의 도리를 한 것에 대하여 붉은 무리의 잔당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견해다. 물론 여기서도 자신의 의지와 그 참여 가담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니, 그것은 누가 보아도 금방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것은 리더의 역할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국민보다는 지도자의 잘못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며칠 전 현충일에도 아파트에서는 겨우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수만이 태극기 조기를 달았었다. 학교에서 국가의 동량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집에도 태극기는 달려 있지 않았었다.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의사의 집에도 태극기는 걸려 있지 않았었다. 서울에서 법대를 졸업하였다고 으시대는 그 분도 태극기를 걸지 않았었다. 그냥 우리처럼 때리면 맞고, 가라면 오는 그런 사람들 몇몇이서 태극기를 달았다.

 

국가의 다른 명절은 다 잊어도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초연하게 사라져간 그 분들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분들의 행동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물질만능 주의라 하여도, 그 분들을 위하여 배려하는 마음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가 없는 설움, 전쟁으로 인한 폐해를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우리는 최소한 지킬 것은 지키고 갖출 것은 갖추는 은혜를 아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