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인의 라이온스클럽 회장 취임식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비회원으로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맨 마지막 테이블에 앉아 가만이보니, 오늘이 바로 그들의 잔치를 치르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런데 호칭을 보니 지역총재가 어떻고, 국제 회장이 어떻고, 그리고 또 회장이 어떻고 하는데, 조직의 수직적 단위 구성표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각자를 모두 회장이라고 부르니 라이온스 회원이 아닌 사람들은 조직 구성을 알아 볼 수가 없다는 추측을 낳게도 하고 있다.
하긴 수직적 조직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한 수평적 회원이라는 의미에서는 작은 단위의 조직도 굳이 회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겠다는 의미를 애써 붙여본다.
신임 회장으로 취임하는 지인으로부터 오늘을 소개받은 것은 약 일주일 전이다. 그때는 별다른 의미없이 받아들였으나 최근에 들어 심각하게 되씹어보아야 하였다. 식장을 빛내기 위하여 방법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보니 일면 부담이 되기도 한 것이다. 회장도 아닌 내가 선물을 사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구나 회원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니 참석 자체도 부담이 가는 그런 형편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국회의원의 축하 화환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지인과 나를 포함한 일행이 불과 4일 전에 만나서 자리를 같이 했던 국회의원에게 말씀드리고 승낙도 받아냈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가 아니고 사적인 자리인 만큼 커다란 화환을 사용하는 것보다, 검소하게 작은 화분으로 대신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나는 평소 퇴근 시간보다 약 30분 정도 빨리 퇴근하여 행사장으로 가보았다. 다행이 늦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이제 한두 명 정도가 와 있을 뿐이었다. 항상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노력한 결과였다.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하려하자 내 이름을 적으면서 회원이 아닌 일반 내빈으로 소개를 하려고 한단다. 00 회사의 00 직책을 가진 아무개로 소개할 심산이었다. 나는 굳이 회사를 알려 드러내고 싶지 않으니 그냥 수필가라고만 적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회원들과 이웃회원들을 모두 소개하고 행정기관이나 기업체 등의 손님은 소개를 하였지만 정작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지루하지 않도록 중간중간에 소개할지도 모른다고 위로하면서 행사가 모두 마칠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유인물을 보면서 이리저리 살피고 있으려니 잘못 된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그럼 그렇지 내가 명색이 글쟁이인데 내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 주려해도 오늘이 6월 12일인데 '초복 중복도 지난 무더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로 시작된 축사가 거슬려 맴돌고 있다. 아마도 작년에 사용했던 축사를 오늘 행사로 이름만 고쳐서 적어 놓으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쓴 내용으로 추정된다.
또 자신들의 회장 총재님은 연신 연호하면서 박수를 강요하고 있지만, 정작 '00 시장대독'의 대독이라는 말을 생략한다든지, 누구가 바빠서 다른 행사장으로 가봐야 하니 식순을 바꿔서 축사만 하고 가는 것 등은 거북하였다. 그러나 오늘 행사는 역시 그들의 잔치인데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회장의 폐회사 마저 끝나고 타종이 있을때까지 내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원래가 나서기를 싫어하는 나였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었다. 처음부터 내빈으로 소개를 시키겠다고 이름을 적어 간 것도 그렇지만, 두 분 국회의원의 대리자격으로 참석하였다며 분위기를 띄우려고 벼르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하긴 들어오면서 보니 국회의원의 화분은 작고 보잘 것 없는데 반해, 일반 기업체나 자영업자들의 꽃은 커다란 화환으로 멋있게 대조를 이루고 있던 것에 초라함을 느끼고 있었던 나였다. 아 ~~ 내가 누구라고 말한 적도 없건만 사회자는 초라한 나를 어떻게 알아보고 소개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참으로 용하기도 용한 사회자다.
얼마 전 직업을 적으라는 양식의 신상명세서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그냥 수필가라고 적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적은 것이었지만, 다 적고나서 되돌아보는 순간 후회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문학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데, 나는 굳이 문학을 들먹일 필요가 있었나하는 자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다시 좌절감이 든다. 내가 오고 싶어서 왔던 것도 아니고, 지인이 회장에 취임하면서 꼭 와서 축하해주고 자리를 빛내 주어야 한다고 해서 왔건만, 역시 이곳은 내가 올 곳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러나 기왕 이렇게 되었는데 다른 것을 생각하면 무엇하리, 온 김에 맛있는 것이나 먹고 가자고 마음 먹었다. 마침 맨 가에 앉아있던 나였기에 제2부 만찬을 알리는 안내가 있자마자 제 1등으로 식당을 찾았다. 축하해주려 온 것이 아니라 먹으러 왔냐고 말을 할지 몰라도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한테는 축하받지 않을테니 음식이나 먹고 가라고 부른 것 아니냐는 반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뷔페의 음식 담을 접시가 행사장 출입구 방문록으로 가려져 있어 불편한 것을 가지고 괜히 종업원에게 교육을 시켰다. 또 음식을 먹을 수있도록 감싸 놓았던 비닐을 미처 벗기지 못한 것에도 야단을 쳤다. 도대체가 음식을 먹기 좋도록 신경쓴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면서...
수필가! 혹시 그가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이기는 한지 의문스럽다. 아니 어쩌면 소용이 없는 존재인지도 모를 일이다. 라이온스처럼 사회에 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남을 돕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의 모임이 그럴진대, 일반 모임, 일반 국민들이야 물어서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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