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길 건너 언덕에 오디가 열렸다. 뽕나무는 작고 볼품이 없지만 그래도 오디는 어김없이 열렸다.
잘 익은 오디를 따 먹어 본지도 몇 해나 되었던가. 아마도 3년은 족히 되었으리라. 그해 여름 무작정 산으로 산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달려서 갔던 곳, 더 이상 차가 올라 갈 수 없는 곳까지 가고는 만족해 하던 곳, 거기서 개울가에 있던 오디를 따 먹었었다.
뽕나무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이 깊은 산 속이라, 사람들이 적어서 오디를 따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하였다. 바꿔 말하면 먹어도 먹어도 잘 익은 새로운 오디가 계속 나오든지, 아니면 오디를 먹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모야 살든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오디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멀지도 않은 아주 가까운 곳에 뽕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 열매가 맺혔다. 전체적으로 보아 잘 익었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이 먹기로는 딱이다. 나무에 매달린 오디가 전체적으로 잘 익기를 바라다가는 어쩌면 하나도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디는 먼저 익는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오디를 먹는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지금은 아침에 볼 때는 분명히 붉은 빛이었는데, 저녁에는 검은 빛으로 익어 있는 계절인 것이다. 익은오디를 따려고 손으로 만지면 따지기도 전에 으깨어지면서 손에는 검은 물감이 들어버린다. 그렇다고 오디 따 먹기를 마다 할 수도 없다. 오디를 먹으려면 으례 그러려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잘 익은 오디는 알알 표면에 물기를 머금고 반짝 반짝 윤기가 난다. 손으로 만지기 전에도 색깔로 보아 알 수 있는 그런 정도로 차이가 난다. 사진의 오디는 색이 검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익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더 익기를 기다릴 수도 없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한 편이어서 어느 누가 먼저 따 먹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학교가 끝나면 책보를 내 팽개치다시피 하고는 바구니를 옆에 끼고 뽕나무밭으로 향하던 생각이 난다. 잘 익은 것만 따 먹어야 겠다고 다짐을 하건만, 먹다 보면 덜익은 오디를 따는 것은 다반사다. 하물며 이제 겨우 붉은 빛이 도는 것마저 따 먹곤 하였다. 한참을 먹다보면 손은 물론이며 입안과 혀가 시커멓게 물들고, 어쩌다 실수로 얼굴에도 칠해놓기 일쑤였었다. 간혹 옷에도 묻어서 혼이 나기도 하였다.
지금은 누가 �아 올 사람도 없고, 허기지고 배 고파서 허겁지겁 먹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떠 먹어본다. 그래도 여전히 내 손에는 오디 물이 들었다. 검게 잘 익은 오디물이다. 손에 묻고 입에 먹칠을 해도 여전히 오디가 좋다. 별미로 간식으로 먹던 오디였건만, 지금은 그냥 먹고 있다.
지나간 추억 속에 쌓여있던 오디를 꺼내어 비교 해가면서 먹어본다. 그 당시 오디와 지금의 오디는 어느 것이 더 클까. 어느 오디가 더 맛있을까. 어떤 것이 더 검은 색일까. 그런데 아무리 잘 익은 오디를 골라서 따 먹어도 옛날 오디만은 못한 것 같다. 크기며 색이며 농도며 맛은 역시 옛날 오디가 월등하다. 아름다운 과거는 나를 행복하게 하고, 정겨웠던 추억은 나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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