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잡다한 무엇들

참깨 꽃이 피었다

꿈꾸는 세상살이 2007. 7. 3. 15:14

꽃이 피었다. 참깨 꽃이다. 깨가 얼마나 좋으면 참깨일까.

그런 참깨가 꽃을 피웠다. 참깨 밭에 간혹 보이는 꽃은 수줍음을 간직한 모습이다. 커다란 잎새 뒤에 숨어서 어쩌다 들켜 나타나는 꽃이다. 아무 말이 없으면 그냥 그렇게 숨어서 지낼 심산이었나보다. 다른 꽃들은 햇빛을 잘 받아야 된다고 하던데 요놈은 이파리 밑에 숨어서도 잘만 자라고 있다. 누가 보아주든 말든 그냥 그렇게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다 익은 열매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깨를 갈아서 마치 소금처럼 작게 부수면 그것이 깨소금이고, 깨소금은 달콤한 맛으로 우리 생활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 열매를 만드는 꽃이 이렇게 초라하게 숨어서 지내고 있다. 드러나 기쁨을 주기도하지만 드러나지 않아도 참깨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의 생활은 가정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대끼고, 위로는 어른들께 눌려있다. 그러나 내가 비록 생활에 찌들고 시달린다 해도 변함없는 가장이다. 누가 보아주든 보아주지 않든 상관없이 가장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다. 자식들이 부모를 잘 몰라준다 해도 가장이라는, 부모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가장이라는데는 이의가 없다. 호적제도도 없어졌다는데 가장이라는 단어가 맞기나 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가장의 위치를 지켜려 노력한다. 비록 그늘에 가려 햇빛을 보지 못하는 참깨꽃과 같은 처지라 하더라도, 어쩌다 부는 바람에 깻잎과 꽃이 헝클어지는 현상을 맞더라도 제자리를 지키려 노력하는 중이다.

 

김치가 설익어 미친 맛이 날때 깨소금을 넣어 맛을 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깨소금이 되고 싶다. 평상시 누가 보아주고 예뻐해주지 않는 꽃이라 하더라도 참깨꽃을 닮고 싶다. 나는 소리없이 피었다가 조용히 지는 꽃이라 하더라도 참깨꽃이 되고 싶다.

관광버스를 타고 떼거지로 몰려와서 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나는 참깨 꽃이기를 바란다. 특별히 날을 정해 관광열차를 운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참깨 꽃을 닮고 싶다.

 

나는 참깨 밭의 주인이 되고 싶다. 어차피 참깨 밭에 서 있다면 참깨의 위치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아니 버리고 싶어도 저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 것이다. 참깨 꽃은 아무 말없이, 드러내 나타내지 않고 그렇게 외로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