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친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가
요즈음 관공서에 가보면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다. 기관마다 너도나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변화하려다보니 간혹 부작용이 생기는 정도다. 조금은 어색하기도 할 정도로 일사천리다.
어느 곳이든 특히 민원실에 들어서면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소리친다.
“어서 오십시오”
“...”
“어떻게 오셨습니까”
갑자기 당한 일이지만 거듭되는 인사에다가 친절하기도 하고 상냥하기도 하여 그냥 말수는 없을 것 같아 한마디 대답한다.
“승용차 타고 왔는데요”
이러한 친절은 사실 문 앞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한 사람만 인사하면 충분하다.
그리고 세부 민원을 신청하기 위하여 담당자가 지정되었을 때 다시 조용히 인사하면 족할 것이다.
무슨 환영 인사가 대수나 되는 것처럼 온 직원이 합창을 하더니 그 다음에는 할 말이 없다. 좀 더 진보된 대화라고 해도 기껏해야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시라는 것 정도다.
하긴 뭐 그 외에 무엇을 더 바라야 되겠는가.
그러나 민원실에 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해도, 그대로 응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민원인들은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
이들은 틈만 나면 의자에 앉고, 소파에 앉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어, 이곳 민원실에서의 짧은 시간까지 앉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데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정말로 의자에 앉기도 아까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업무를 보러 왔기에 마음이 조급한 탓일게다. 사실 이 두 가지 모두가 맞는 답이라고 한다면 민원인에게 베푸는 친절이 겨우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고 해서는 격에 맞지 않을 것 같다.
확실히 말해서 약 3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든지, 이것을 작성해야 되니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권유가 있어야 옳다고 본다.
그런데 보통의 민원사무원들은 민원인 응대가 거의 유사하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알았어요.”
“본인이십니까?”
“예”
“도장 주세요.”
“여기요.”
“의뢰인의 신분증과 도장, 대리인의 신분증과 도장이 필요한데요.”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요?”
“규정이 그렇습니다. 본인이 아니면 원래 복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리인과 의뢰인 관계가 확실히 밝혀졌는데도 그렇게 해야 되나요.”
“우리도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 없다고 생각은 하는데, 내 맘대로 된다 안 된다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규정을 따를 수밖에...”
대체로 이 정도 수준에서 대화는 끝이 난다.
그러니 굳이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고 해서 앉아 기다릴 필요도 없고, 민원 창구 직원의 말은 가급적 듣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한다.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수긍이 가는 정도다. 그러나 민원 신고의 경우 가끔씩 엉뚱한 결과를 빚기도 한다. 그래서 민원인이 민원담당 공무원에게 큰소리를 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대로 바꾸었냐 말입니다”
“아니, 사촌동생이나, 동생 사촌이나 뭐가 다른가요?”
“뭐가 다르건 말건 내가 신청한 서류에는 사촌동생이라고 적혔는데, 왜 당신들이 마음대로 동생 사촌이라고 고쳐 적었느냐 말입니다.”
“그거나 저거나 내용이 똑같은데 뭘 그럽니까.”
민원담당이 보아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사소한 사항이라는 해석처럼 들린다.
그래도 민원인의 기세가 누그러들지 않는다.
“내용이 똑같다니 뭐가 똑같아요.”
“그러면 이렇게 적었다고 해서 뭐가 문제가 되던가요?”
“문제가 되니까 이렇게 왔지요. 바빠 죽을 지경인데 다른 공무원이 안 된다고 고쳐오라고 하잖아요. 전부터 계속해서 사촌동생이라고 적어 와서 앞의 서류들이 모두 그렇게 적혀 있으니, 이제 와서 동생사촌이라고 하면 앞 뒤 서류중 하나는 고쳐야 하고, 아니면 서로 같다는 사유서를 써야 된다잖아요”
“참 별거다 가지고 트집이네”
“그렇지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트집 잡는 것이 공무원인데, 왜 민원서류를 자기들 마음대로 바꿔서 이렇게 골탕 먹이고 복잡하게 그럽니까.”
“알았습니다, 이 서류 좀 작성해 주세요.”
“이건 뭐죠”
“정정 신청서입니다. 그 내용을 모두 적으시고 어떤 것을 어떻게 바꿔 달라고 적 으면 됩니다. 여기 도장 찍으시고, 주민등록증 보여 주세요. 복사 좀 하겠습니다”
“내가 잘못 쓴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정정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지요”
“그래도 서류를 고쳐야 하니 무슨 근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근거는 무슨 근거요. 처음부터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정정 신청은 내가 내야 한 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말이 되든 안 되든 현재 서류를 고쳐야 되니 별 방법이 없잖아요.”
“처음에 잘못 작성한 사람이 그런 내용을 적고 정정 신청하면 되잖아요.”
민원담당 공무원은 원칙을 지키려 많은 애를 쓰는 듯 했다.
“우리 공무원들은 타인의 정정 신청서를 대신 작성해 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서류를 임의로 고칠 수 있다고 봐서 그렇게는 못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 때는 공무원이 편하네, 잘못은 자기가 해 놓고 미안하다고는 내가 말하고. 정정 신청하는 사람을 공무원 아무개 하지 말고, 그냥 이름만 적으면 공무원인지 민원인인지 모르잖아요.”
“너무 그러지 말고 그냥 적어주세요.”
“알았어요. 그런데 생각할수록 신경질 나잖아요.”
“다 되었으면 이것을 가지고 총무과에 가서 도장을 받아오세요. 그러면 여기서 정정 해드립니다.”
“뭐요? 총무과까지 가서 확인 받아오라고요? 그것도 잘못한 사람이 알아서 해야지, 누구보고 가라 오라 합니까?”
“그래도 절차가 그런 걸 어떡해요. 다 순서가 있는 것인데”
“그럼 틀릴 때도 순서 따져서 틀렸습니까?”
“그래도 어떡합니까. 총무과장의 도장이 있어야 수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데...”
“아무튼 나는 못 가니 알아서 해주세요. 그것이 민원인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지, 민원인보고 여기 저기 들러서 갔다 오라고 하면 누구 편하라는 민원입니까?”
민원인과 담당공무원은 서로 밀리지 않으려는 듯 팽팽하기만 하다.
“그런데 내가 총무과에 갔다 오면 다른 사람들 민원을 그만큼 늦게 볼 수밖에 없어서 다른 민원인들이 짜증을 내거든요”
“민원인 생각하는 그런 걱정은 마세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같은 민원인으로서 내가 설득해서 기다리라고 말해 줄께요.”
“그럼 나는 민원인이 기다리는 것은 책임 못 집니다.”
“그래요. 누가 누구를 위한 민원인데 민원인이 그것 하나 이해 못하겠어요?”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쯤 되면 민원의 최상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된다.
비록 원치 않은 서비스였지만 그래도 민원인을 위한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증거다. 거기다가 이런 경우는 정정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자기들이 다 알아서 처리해 준다는 것도 편리라면 일종의 편리함이다.
형편이 이 정도이니 어느 기관에서나 민원인들이 민원을 다 마칠 때까지 기분 좋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나마 가장 최소 단위인 읍면동에서는 비교적 낫고, 시군으로 가면 그 애로가 조금 심해진다. 그러다가 거대한 광역자치단체에 가면 정말 그 차이를 실감한다. 사실은 그들이라고 해도 역시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국민에 지나지 않는데 위치가 역전된 것에 마음이 분해진다.
그들과 대면하면 무엇인가 구걸하러온 것처럼 작아만 진다. 그들은 바쁜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다. 그러면서도 자기들 일은 항상 옳은 것이다. 그것이 자기들 업무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편의를 봐주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든다.
지난번 광역자치단체에 당한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민원인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할진대, 그때 무슨 질문을 좀 했기로서니 그런 것은 알 필요도 없고 시키는 서류나 제대로 해 오라는 식의 핀잔을 먹었었다.
그때도 나는 분통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결국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소리쳤다.
“너희가 뭔데 나를 무시하는 거야. 너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냐 말이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화장실 문을 노크하며 물었다.
“여보세요. 왜 그러세요. 뭐 도와 드릴까요?”
이렇게 민원인들끼리는 잘도 통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촌동생이나 동생 사촌을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개새끼와 새끼 개도 같은가? 혹시 같다고 우긴다면 외국의 예를 들어 보자.
로버트 존과 존 로버트를 같다고 우길 것인가?
틀리건 맞건, 어느 것이 더 듣기 좋건 아니건 따지지 말고 민원인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한다. 이때 만약 자신이 임의로 수정해 놓으면 그 뒷일은 모두가 엉망이 되고 만다. 다만, 공무원이 추가로 해줄 수 있는 말은 혹시 이것이 저것과 혼동된 것은 아닌지 민원인에게 확인하는 자세여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민원인에 대한 친절서비스이다.
조급한 사람에게 기한이 없는 의자를 권하는 것보다는, 민원인의 마음이 편하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 절실하다. 그래야 자투리 시간에라도 다른 일을 보고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한마디 더해 주어야겠다.
“공무원들이 기업을 알기는 하는가. 기업들은 그렇게 복잡하게 요구하지도 않지만...”
기업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생존 전략의 방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빠른 속도로 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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