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언제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홀연히 나타났다. 가녀린 몸매와 빈약한 가슴은 그냥 한 눈에 보아도 뭔가가 부족해 보였다. 아무리 마르고 야윈 체격을 선호하는 세상이라지만 왠지 보기에 안 좋아 보이는 모습을 한 여인이었다.
토요일 오후, 길가에 세워둔 차량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시내에서 가장 큰 공원과 아파트 입구가 만나는 지점으로 중앙의 안전지대에도 빼곡히 주차를 하여 여간 신경 쓰이는 곳이 아니다.
그런 차도를 유유히 건너가는 여인이 있었다. 그렇다고 다가오는 차량을 의식하면서 빨리 뛰어가는 것도 아니고, 차량을 보면서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가자고 애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길을 건너야 하니 차량들은 알아서 피해가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아니 그도 아닌 그냥 철저한 무시로 일관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얄미워졌다. 나는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다가갔지만, 그렇다고 주저하지도 않았으며 그녀에게 바짝 붙여서 멈춰 섰다. 순전히 위협적인 심술이 발동한 때문이었다. 자기는 편리한 무단횡단이겠지만, 내리막길을 운전해오는 사람도 생각해 주어야하지 않느냐고 친절한 교육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불과 4미터 옆에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그렇다고 얼굴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만났다가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하였다.
어쩌면 내 차와 그녀가 부딪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는 벌써 반대편 차도를 건너가고 있었다. 비척비척 걸어가는 모습은 어딘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더운 여름에 반바지를 입은 다리가 가뭄을 만난 옥수수와 흡사하다. 거기다가 툭하니 불거져 나온 무릎 뼈는 안쪽으로 튀어나와 기형을 이루고 있었다. 온 몸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걸어가는 것조차 위태로워 보인다.
‘아니 저런 사람이 차도를 함부로 지나다니다니...’ 하면서 화가 치민다. 그것은 교통예절에 대한 교육에 앞서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는 증거다. 그런 중에도 그녀는 자기 할 일은 다하고 다녔다. 차도에서 뭔가를 집어 드는 순간에도 달려오는 차량에게는 전혀 눈길한 번 주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몸으로 무단 횡단을 자기 맘대로 하고, 운전자에게는 미안하다는 표정 한 번 짓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얄미워지기 시작하였다.
도로를 완전히 건너 공원입구에 다다르자 그녀는 또 다시 뭔가를 집어 들었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아 혹시 돌멩이라도 들고는 나에게 던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걱정마저 들었다. 옷차림이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는가 하면, 도로에서 이것저것 주워들고 다니는 폼이 영 기분에 좋아 뵈지 않았던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내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돌려 심호흡을 해보고, 나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테이프를 틀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 했나요~’ 요즘 며칠 전부터 일부러 듣고 있는 복음성가가 흘러나왔다. 한때나마 그녀를 미워했었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바싹 마른 그녀의 손에는 누군가가 먹고 버린 아이스크림 봉지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습기가 질퍽한 울타리 밑 휴지를 막 주우려는 듯 불편한 허리를 굽히고 있어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긴 저런 몸이라면 제대로 된 신호에 맞춰 걸아가도, 내 눈에는 항상 빨간불에 건너가고 있는 것만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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