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언제 올거니
올해도 가을은 왔다. 애타게 기다림 끝에 오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몇 해 전에는 매미가 온 나라를 휘젓고 다니더니, 올해는 태풍 나리가 추석빔들을 모아 놓고 싹쓸이를 해 버렸다. 예부터 불난리는 타고 난 재라도 있지만 물난리는 아무 흔적도 없다고 하였었다. 그러나 물난리는 모든 것을 쓸어 가기가 미안하였든지, 흙과 나뭇가지 등 온갖 쓰레기를 남겨 두고 떠났다. 이제 그것들을 치우고 정리할 틈도 없이 추석이 와버린 것이다.
수해지역에 연고를 둔 친척들과 가족들은 물난리를 수습할 요량으로 고향을 방문하여 밤낮을 잊은지 오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당장 기거할 데가 없는 사람들은 도움을 주러 오는 사람들을 맞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를 못내는 경우마저 생겨났다. 그래서 도움을 주러 오는 것조차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물난리가 무섭다더니 과연 무섭기가 실감나는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서 바로 추석을 동반하고 왔다. 수재민들은 시름에 잠겨 있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준비하여야 할 것도 많은 추석인 것이다. 묵은 빨래를 하여 기분을 정갈하게 하고, 새로 만든 반찬이며 차례상에 올릴 음식도 준비하여야 한다. 그런가 하면 묘소 주위에 있는 나무들의 잔가지를 쳐내기도 하고, 묘역은 벌초도 하여야 한다.
이렇듯 추석을 맞아 조상의 묘를 벌초하면서 남의 묘까지 손질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수해를 당해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을 도우는 차원이 아니라 항상 자기 일처럼 여기며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대체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의 묘라든지, 일가친척의 묘라든지, 아니면 특별히 부탁을 받은 경우에는 정성껏 관리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별도의 부탁을 받으나 안받으나 빼놓지 않고 벌초를 해주는 사람도 있다. 고향은 여느 시골이나 매 한가지겠지만, 한집 건너 친척이고 한집 건너 동창인 정도니 어느 누구도 서로 소홀할 수 없는 인연이 작용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람은 자기 조상에 대한 묘를 벌초하면서 항상 옆의 묘까지 관리해오고 있다. 그 묘는 객지에 나가 있는 초등학교 동창네 것인데, 타향으로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진 친구에게 커다란 짐을 덜어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까짓 벌초하나 해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마는, 사전에 준비하고 날을 잡아 풀을 베는 것은 그냥 생각만큼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올 추석에도 말끔히 벌초를 해 놓았다. 하는 김에 조금만 신경 쓰고 시간을 내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어설프게 시늉만 냈다가는 오히려 눈치먹기 딱 좋은 일이 이런 일이었다.
성묘가 끝나면 말끔히 단장된 묘를 보고 그냥 말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뭐를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니 대접해도 받지도 않는다. 이런 경우 그간의 회포도 풀겸, 조용한 시간에 만나 술잔도 기울이고 식사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니 넉넉한 인심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둘은 벌써 이런 마음이 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추석 전의 벌초는 적당한 날을 잡아야 하며, 그날은 다른 일을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보다 예정에 없는 귀향을 한 번 더 해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부담이다. 이런 때의 고민을 해결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후원이 아닐 수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어찌 벌초 한 가지에 그친다고 볼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을 보면서 감히 멀지만 동행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느끼고 있을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도움이 아닌가 한다. 둘의 우정을 오래토록 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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